정의
일제강점기 개성 남부교회, 경기도 파주구읍교회, 개풍군 풍덕교회 등에서 목회한 목사.
생애 및 활동사항
1919년 3·1운동이 일어났을 때 독립선언서를 어윤희, 신관빈 등에게 전달하고 3월 3일 개성지역 만세시위를 주도한 혐의로 체포되어 실형을 선고받았다.
1921년 서울 종교교회로 옮겼고, 1922년 장로목사 안수를 받았다. 1922년 개성 북부지방 순회목사가 되었고, 1925년 춘천지방 순회목사, 1927년 자교교회 개성구역장이 되었다. 1935년 개성 남부교회를 담임하고 있을 때, 송도고등보통학교의 재단법인 조직을 위한 실행위원이 되었다. 1935년 개성 남한(南寒)교회, 1936년 경기도 파주구읍(坡州舊邑)교회, 1937년 개풍군 풍덕(豊德)교회를 담임하였다. 이후의 행적은 확인되지 않는다. 그의 글 「물질적 낙원과 신령적 낙원」이 1922년 『신학세계』7권 4호에 실려 있다.
상훈과 추모
참고문헌
- 『한국기독교수난사』(김광수, 기독교문사, 1978)
- 『감리교와 신학대학사』(이성삼, 한국교육도서출판사, 1977)
- 『조선총독부관보』(제573호-1928.11.27; 제2819-1936.6.8; 제3178호-1937.8.18.)
- 『매일신보』(1919.9.14; 1919.11.8; 1920.4.11; 1934.5.11.)
- 『대한협회회보』(제10호-1909.1.25; 제11호-1909.2.25.)
- 『대한매일신보』(1908.2.23; 1906.6.5; 1910.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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