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5년 경기도 양주에서 출생하였다. 1898년 배재학당에 입학하고, 1902년에 졸업하였다. 1908년 개성교육회 임원으로, 1909년 대한협회 개성지회 평의원으로 활동하였다. 1906년 배의(培義)학교 부교장 겸 대한매일신보 개성지사원, 1910년 창유학교 교장으로 재직하는 등 개성 지역의 교육사업에 헌신하였다. 1915년 감리교 협성신학교를 졸업하고(3회), 1912년 5월 남감리교회 전도사 직첩을 받았고, 감리교주일학교 총무가 되었다. 1913년 수표교교회 전도사, 1915년 개성 동부지방 순행전도사가 되었다. 1917년 집사목사 안수를 받고 개성 북부교회에서 시무하였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났을 때 독립선언서를 어윤희, 신관빈 등에게 전달하고 3월 3일 개성지역 만세시위를 주도한 혐의로 체포되어 실형을 선고받았다.
1921년 서울 종교교회로 옮겼고, 1922년 장로목사 안수를 받았다. 1922년 개성 북부지방 순회목사가 되었고, 1925년 춘천지방 순회목사, 1927년 자교교회 개성구역장이 되었다. 1935년 개성 남부교회를 담임하고 있을 때, 송도고등보통학교의 재단법인 조직을 위한 실행위원이 되었다. 1935년 개성 남한(南寒)교회, 1936년 경기도 파주구읍(坡州舊邑)교회, 1937년 개풍군 풍덕(豊德)교회를 담임하였다. 이후의 행적은 확인되지 않는다. 그의 글 「물질적 낙원과 신령적 낙원」이 1922년 『신학세계』7권 4호에 실려 있다.
3·1운동에 참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2011년 8월 15일 제66주년 광복절 기념일에 대통령표창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