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로회보 ()

개신교
문헌
국민정신총동원 조선예수교장로회 연맹에서 장로교회의 기관지로 1940년에 창간한 신문. 개신교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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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국민정신총동원 조선예수교장로회 연맹에서 장로교회의 기관지로 1940년에 창간한 신문. 개신교신문.
편찬/발간 경위

1938년 7월 7일 중일전쟁 1주년을 맞이하여 일제는 식민지 조선의 침략전쟁 협력을 목표로 황국신민화 운동의 중심 기구인 ‘국민정신총동원 조선연맹’을 결성하였다. 조선총독부는 1939년부터 연맹 조직을 더욱 강화하고 각 단체들을 연맹에 통합시키는 작업을 진행했다. 1940년 10월 16일에는 국민정신총동원 조선연맹을 해체하고 조선총독을 총재로 하는 국민총력조선연맹을 조직하였고, 기독교 총회 역시 이 연맹의 하부조직으로 편입되었다.

1939년 9월 8~11일 신의주 제2예배당에서 열린 제28회 조선예수교장로회 총회에서 국민정신총동원 조선예수교장로회 연맹(일명 精動 장로회총회연맹)이 결성되었고, 총회장 윤하영 목사가 이사장, 각 노회장이 이사로, 총 간사는 정인과 목사가 맡게 되었다. 1940년 12월 6일 국민총력 조선예수교장로회 연맹으로 흡수 개편되었는데, 이 연맹의 설립 목적은“내선일체 거국일치 국민정신 총동원의 취지의 달성을 도모하고 전도보국의 실을 거둘 것”(연맹 규약 제2조)이었다. 이 연맹은 그 하부에 다시 각 노회 연맹을 두고 각 교회마다 애국반을 조직케 하여 부일 협력 활동을 하였다.

이 연맹의 주요활동 중 하나가 『장로회보』의 창간, 발행이었다. 『장로회보』는 1940년 1월 24일 창간되었고, 저작자는 오문환(吳文煥), 저작 겸 발행인은 정태희(鄭泰熙)였다. 1940년 12월 18일(제47호)부터 저작 겸 발행인이 金光洛泳으로 바뀌었다. 『장로회보』의 내용은 국민정신총동원 조선예수교장로회 총회 연맹 공문 및 기사, 각 노회의 지맹(支盟) 결성 소식, 각 교회의 국가 행사와 애국반 조직 및 활동 내용, ‘황군 위문(皇軍慰問)’ 내용, ‘애국헌금(愛國獻金)’ 모금 등으로 구성되었다. 장로회보사의 주소는 경성부 서대문정(西大門町) 2丁目 89, 장로회총회사무국이었다.

내용

조선예수교장로회 총회는 1940년 10월 9일 각 교회에 알리는 “특고”(特告)에서 10월 20일 주일에 “애국주일 예배”를 드리고, “국방헌금”을 걷어 총회사무소에 보내도록 했다. 1940년 10월 16일자 『장로회보』 권두 사설에서 “근수(謹守) 애국주일”이라는 제목으로 “애국”이 성서의 가르침이며, “신조에 합치되는 것이고, 신자의 당연한 법”임을 강조하면서, 애국주일을 삼가 지키는 것이 “절대의 의무”라고 주장하고 있다. 특히 이 글에서는 애국주일을 지키는 것을 “시국인식의 제3단계”(1. 신사참배, 2. 정동연맹, 3. 애국주일)로 인식하고 있다.(『장로회보』1940년 10월 16일자 「卷頭 謹守 愛國主日」)

그러나 이 “애국주일”은 총회의 독려에도 개교회에서 그다지 철저히 지켜진 것 같지는 않다. 『장로회보』 1940년 10월 30일자 총회장 명의의 “特告”에서 보듯이 그날 실행하지 못한 교회는 그 후 언제든지 한 주일을 택하여 애국 주일을 지키고 국방헌금을 거두어 총회로 보내도록 당부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해 11월 20일까지 이른바 “애국헌금(국방헌금)”을 총회에 보내온 교회는 140교회, 총 1,487원 2전에 불과했고, 이듬해인 1941년 5월 14일까지도 누계 614교회 총 2,677원 16전이었다.

의의와 평가

1937년 7월 중일전쟁을 일으킨 일제는 종교계를 더욱 철저히 통제하여 전쟁 협력에 이용하고, 이에 거슬리는 교단 및 단체는 철저히 탄압하였다. 『장로회보』는 기독교가 탄압받던 시기인 1940년부터 1942년까지 발행된 장로교회의 기관지로서, 철저히 친일적 성향을 갖고 있었다.

참고문헌

『식민권력과 종교』(김승태,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2012)
「애국헌금에 대하여」(『장로회보』1941.5.14.)
「애국헌금 속보」(『장로회보』1940.11.20.)
「卷頭 謹守 愛國主日」(『장로회보』1940.10.16.)
「特告」(『장로회보』1940.10.9.)
집필자
박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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