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내시노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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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는 조선시대, 16세에서 60세 사이 공노비가 입역(立役) · 선상(選上)하는 대신 신공(身貢)으로 바친 포목이다. 각사노비로서 지방에 거주하는 외방노비는 대체로 납공의 의무를 졌다. 신공으로 낸 포목은 사섬시에서 관할하였으나, 관서를 통폐합한 뒤에는 호조가 주관하였다. 포목의 액수는 시대마다 달랐으나 점차 삭감되어 18세기 후반에는 양인과 같은 1필로 수렴하였다.
공포 (貢布)
공포는 조선시대, 16세에서 60세 사이 공노비가 입역(立役) · 선상(選上)하는 대신 신공(身貢)으로 바친 포목이다. 각사노비로서 지방에 거주하는 외방노비는 대체로 납공의 의무를 졌다. 신공으로 낸 포목은 사섬시에서 관할하였으나, 관서를 통폐합한 뒤에는 호조가 주관하였다. 포목의 액수는 시대마다 달랐으나 점차 삭감되어 18세기 후반에는 양인과 같은 1필로 수렴하였다.
외거노비는 고려·조선시대에 관청이나 주인의 거주지로부터 떨어져 지내며 주어진 신공을 부담한 노비이다. 이들 외거노비는 여러 가지 형태의 신역을 부담하였다. 고려시대 공노비 가운데 외거노비는 왕실이나 관청 소유의 토지를 경작하였으며, 사노비 가운데 외거노비는 외방에서 주인의 토지를 경작하였다. 조선의 공노비 중 외거노비는 입역노비·봉족노비·납공노비로 구분되며 60세까지 신역을 부담하였다. 사노비에 해당하는 외거노비는 원방노비·원처노비라고 불렀는데, 주인인 상전에게 신공을 납부하였다.
외거노비 (外居奴婢)
외거노비는 고려·조선시대에 관청이나 주인의 거주지로부터 떨어져 지내며 주어진 신공을 부담한 노비이다. 이들 외거노비는 여러 가지 형태의 신역을 부담하였다. 고려시대 공노비 가운데 외거노비는 왕실이나 관청 소유의 토지를 경작하였으며, 사노비 가운데 외거노비는 외방에서 주인의 토지를 경작하였다. 조선의 공노비 중 외거노비는 입역노비·봉족노비·납공노비로 구분되며 60세까지 신역을 부담하였다. 사노비에 해당하는 외거노비는 원방노비·원처노비라고 불렀는데, 주인인 상전에게 신공을 납부하였다.
노비비총제(奴婢比摠制)는 내시 노비의 변동을 파악하기 위해 조정에서 추쇄관을 파견하던 방식을 중지하고, 특정 해의 노비 수를 기준으로 매년 같은 신공을 징수하던 제도이다. 추쇄관 파견은 지방관청에게도 큰 재정적 부담이었고, 중앙정부 입장에서도 실효성이 떨어졌다. 이에 추쇄가 점차 형식적인 절차로 변해 갔고, 마침내 중앙정부는 매년 일정한 노비 신공을 확보할 수 있는 비총제를 시행하였다.
노비비총제 (奴婢比摠制)
노비비총제(奴婢比摠制)는 내시 노비의 변동을 파악하기 위해 조정에서 추쇄관을 파견하던 방식을 중지하고, 특정 해의 노비 수를 기준으로 매년 같은 신공을 징수하던 제도이다. 추쇄관 파견은 지방관청에게도 큰 재정적 부담이었고, 중앙정부 입장에서도 실효성이 떨어졌다. 이에 추쇄가 점차 형식적인 절차로 변해 갔고, 마침내 중앙정부는 매년 일정한 노비 신공을 확보할 수 있는 비총제를 시행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