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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탕고(內帑庫)는 조선시대에 왕실의 재물을 보관하던 창고이다. 왕실 사유재산을 관리하던 내수사의 창고이다. 17세기부터 각종 궁방(宮房)이 창설되면서 내탕을 관리하는 기구가 다양해졌다. 내수사와 궁방은 토지와 노비의 신공을 주요 재원으로 하여 운영되었다.
내탕고 (內帑庫)
내탕고(內帑庫)는 조선시대에 왕실의 재물을 보관하던 창고이다. 왕실 사유재산을 관리하던 내수사의 창고이다. 17세기부터 각종 궁방(宮房)이 창설되면서 내탕을 관리하는 기구가 다양해졌다. 내수사와 궁방은 토지와 노비의 신공을 주요 재원으로 하여 운영되었다.
궁방은 조선시대 왕실의 일부였던 궁실(宮室)과 왕실에서 분가, 독립한 궁가(宮家)의 통칭이다. 1사7궁(一司七宮)에 해당하는 내수사, 수진궁, 어의궁, 명례궁, 용동궁, 육상궁, 선희궁, 경우궁을 비롯하여 68개가 있었다. 그 존속기간과 기능에 따라 분류되었다. 왕패(王牌)나 별사문적(別賜文蹟) 등을 보유한 궁방이 있었다. 후궁·대군·공주 등 해당 인물의 생활자료를 공급하는 설궁(設宮), 제사를 지내는 제사궁(祭祀宮)도 있었다. 궁방에게는 토지와 어전(漁箭)·염분(鹽盆)·산림천택(山林川澤) 등이 절수(折受)의 형태로 지급되었다.
궁방 (宮房)
궁방은 조선시대 왕실의 일부였던 궁실(宮室)과 왕실에서 분가, 독립한 궁가(宮家)의 통칭이다. 1사7궁(一司七宮)에 해당하는 내수사, 수진궁, 어의궁, 명례궁, 용동궁, 육상궁, 선희궁, 경우궁을 비롯하여 68개가 있었다. 그 존속기간과 기능에 따라 분류되었다. 왕패(王牌)나 별사문적(別賜文蹟) 등을 보유한 궁방이 있었다. 후궁·대군·공주 등 해당 인물의 생활자료를 공급하는 설궁(設宮), 제사를 지내는 제사궁(祭祀宮)도 있었다. 궁방에게는 토지와 어전(漁箭)·염분(鹽盆)·산림천택(山林川澤) 등이 절수(折受)의 형태로 지급되었다.
용동궁은 서울특별시 중구 정동에 있던 조선 제13대 왕 명종의 아들인 순회세자의 궁가이다. 순회세자 사후 왕실의 내탕(內帑)을 담당하였다. 임진왜란 이후에는 명례궁과 더불어 왕실 내탕 중 왕후 및 왕대비의 내탕을 마련하고 관리하였다. 1907년(융희 1) 궁방 관리인인 도장(導掌)이 폐지되고, 순종 즉위 후 모든 재산을 제실에서 관리하면서 1909년 폐지되었다.
용동궁 (龍洞宮)
용동궁은 서울특별시 중구 정동에 있던 조선 제13대 왕 명종의 아들인 순회세자의 궁가이다. 순회세자 사후 왕실의 내탕(內帑)을 담당하였다. 임진왜란 이후에는 명례궁과 더불어 왕실 내탕 중 왕후 및 왕대비의 내탕을 마련하고 관리하였다. 1907년(융희 1) 궁방 관리인인 도장(導掌)이 폐지되고, 순종 즉위 후 모든 재산을 제실에서 관리하면서 1909년 폐지되었다.
명례궁은 조선왕조의 중궁전에 속한 내탕으로 궁중의 주방에 식재료를 공급하는 기관이다. 조선왕조 후기에 왕실의 생활 재료를 조달하기 위해 궁방이 설치되었으며 궁방 중에서 1사 4궁이 규모가 크고 비중이 컸다. 명례궁은 그중 하나이며, 1623년경에는 인목 대비(仁穆大妃)의 내탕으로 설치되었으나 최종적으로는 중궁전에 속하여 궁중의 연회나 다례(茶禮)를 위한 식재료를 조달하였다.
명례궁 (明禮宮)
명례궁은 조선왕조의 중궁전에 속한 내탕으로 궁중의 주방에 식재료를 공급하는 기관이다. 조선왕조 후기에 왕실의 생활 재료를 조달하기 위해 궁방이 설치되었으며 궁방 중에서 1사 4궁이 규모가 크고 비중이 컸다. 명례궁은 그중 하나이며, 1623년경에는 인목 대비(仁穆大妃)의 내탕으로 설치되었으나 최종적으로는 중궁전에 속하여 궁중의 연회나 다례(茶禮)를 위한 식재료를 조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