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서울특별시 중구 정동에 있던 조선 제13대 왕 명종의 아들인 순회세자의 궁가.
건립경위
변천
용동궁과 같은 기능을 했던 명례궁은 본래 명례방에 있던 인목왕후의 본궁이었으나, 임진왜란 이후에 정릉동으로 옮겨 대한제국기까지 존재했었다.
특징
1743년(영조 19)에는 용동궁의 대문이 대정동(大貞洞)으로 나 있으며 명례궁과는 서로 가까웠다고 한다. 시기는 알 수 없지만 후대에 중부(中部) 수진방(壽進坊)으로 옮겨졌다. 1907년(융희 1) 궁방 관리인인 도장(導掌)이 폐지되고, 순종 즉위 후 모든 재산을 제실에서 관리하다가 폐지되었다. 해당 터에는 숙명여학교가 세워졌다.
참고문헌
원전
- 『궁궐지(宮闕志)』
- 『대동지지(大東地志)』
- 『동국여지비고(東國輿地備攷)』
-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
- 『한경지략(漢京識略)』
논문
- 박혜정, 조재모, 「조선후기 사의당의 위치와 건축적 특징에 대한 추론」(『건축역사연구』 26권 2호, 한국건축역사학회, 2017)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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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조선 시대에, 왕실의 재물을 넣어 두던 창고.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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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
: 왕세자가 왕위에 오르기 전에 죽고 왕세손이 즉위하였을 때, 죽은 왕세자의 빈(嬪)을 이르던 말.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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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3
: 서울특별시 중구 정동에 있는 조선 시대의 궁궐. 본래는 행궁(行宮)이었으나 선조 26년(1593)에 의주에서 환도한 후 보수하여 궁궐로 삼았다. 지금 남아 있는 건물은 중화전, 함녕전, 석조전 등이며 정문으로 대한문이 있다. 칠궁의 하나이다. 사적 정식 명칭은 ‘덕수궁’이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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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4
: 조선 시대에, 왕실의 일부인 궁실(宮室)과 왕실에서 분가하여 독립한 대원군ㆍ왕자군ㆍ공주ㆍ옹주가 살던 집을 통틀어 이르던 말.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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