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 화령전 운한각 · 복도각 · 이안청은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신풍동에 있는 정조의 어진을 모신 영전 건축물이다. 1801년(순조 1)에 건립한 정조의 어진을 봉안한 영전 건축으로 수원 화성행궁의 북쪽에 있다. 화령전의 중심 건물인 운한각 · 복도각 · 이안청은 고급 건축기술로 지어졌으며, 정전과 이안청이 복도각으로 이어진 특이하면서도 합리적인 구조이다. 이것은 18세기 말, 19세기의 합리적 사고가 예를 중히 여기는 길례용 건축에도 적극 반영되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화령전은 1801년에 건립하여 정조의 어진을 봉안하였다. 1804년 순조가 친제(親祭)함에 따라 서문을 향문 1칸과 협문 1칸으로 고쳐 지었으며, 친제 후 정전에는 운한각(雲漢閣)이라는 현판이 내려졌다.
1872년(고종 9)에는 운한각 내 합자와 좌우 협실의 온돌을 마루로 고쳤다. 1908년(융희 2) 정조의 어진이 창덕궁 선원전으로 옮겨 감에 따라 영전의 기능을 상실하였다.
일제강점기부터 광복 이후까지 전재민과 노량무당 등의 숙소로 사용되면서 훼손되었으나, 1949년 수원 주민과 대한청년단원들이 나서서 수리하였고, 1966년에는 정부에 의해 대대적인 수리가 진행되었다.
조선시대 왕실 길례용 건물이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할 공간을 살펴보면 정전(正殿)과 이안청(移安廳), 배설청(排設廳), 안향청(安香廳), 재실(齋室), 전사청(典祀廳) 등이다.
이 중 정전, 이안청, 배설청이 하나의 영역을 이루며 담장을 둘러 내삼문을 통해 출입하도록 하고, 나머지 영역은 제향 영역의 입구 쪽에 위치하며 외삼문을 통해 출입하도록 되어 있다.
화령전도 기본적으로는 같은 구성을 하고 있다. 그러나 정전과 이안청이 복도각이라는 특별한 건축공간으로 연결되었다는 점과 배설청이 없는 것은 차별화되는 점이다. 일반적인 길례 공간에서 정전과 이안청은 비교적 거리가 있는 지점에 있다.
따라서 정전에서 이안청으로 신주나 영정을 옮길 때에는 가마를 이용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짧은 거리인데도 가마를 이용하는 것은 격식에 맞을지는 모르겠지만 번거로운 절차였음에 틀림없다. 복도각은 비가 오는 날씨에도 불편함 없이 이안례를 행할 수 있는 건축적 장치다. 즉, 합리적 사고로부터 비롯된 공간이라 볼 수 있다.
정전인 운한각은 어칸에 어진 봉안용 합자를 설치하고 좌우에 협실을 둔 구조로, 원래 내합과 좌우 협실의 바닥에는 온돌을 깔았으나, 고종 대에 마루로 변경하였다. 합자와 협실의 벽체와 창호의 변형 및 소실이 확인되기는 하나, 건립 당시의 구조체가 온전히 유지되고 있으며, 내부 단청 및 종도리의 용무늬, 각종 철물, 후면의 화방벽 등은 원형을 잃지 않고 있다.
이안청은 운한각의 동편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서 정전을 바라보며 건립된 건물로, 운한각과 같은 뛰어난 건축 수법으로 지어졌고 현재에도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복도각은 화령전의 동 협실의 뒷부분과 이안청의 서측면을 연결하는 구조로 가구(架構)는 단순하지만 정전이나 이안청과 다름없이 섬세한 목재 가공과 결구 기법을 보이는 건물이다.
화령전은 지방에 건립된 건물이지만 왕실의 지원을 받아 조성된 것으로 뛰어난 건축 수법을 보인다. 이에 더하여 정전과 이안청이 복도각으로 이어진 특이하면서도 합리적인 구성은 이전의 영전이나 진전(眞殿)에서는 볼 수 없는 것이다.
이는 18세기 말, 19세기의 합리적 사고가 예를 중히 여기는 길례용 건축에도 적극 반영되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사례로 가치가 크다고 할 수 있다. 2019년 8월 29일 보물로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