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농민계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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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민주보는 1945년 12월 17일 미군정청 공보부에서 창간하여 농민을 대상으로 무료로 배부한 한글 신문이다. 타블로이드판 4면 주간지로서 창간 당시 80만부를 발간할 정도로 규모가 컸으나, 이후 여러 사정으로 격주 또는 월간으로 발간되기도 했으며, 부수도 1947년 들어서 30만부로 축소되었고 1948년 2월부터는 평균 7만 5천부 정도가 발행되었다. 지면 구성은 미군정의 주요 활동, 한국 및 한국 관련 국제뉴스, 정치교육, 영농교육, 가정란 등으로 이루어졌다.
농민주보 (農民週報)
농민주보는 1945년 12월 17일 미군정청 공보부에서 창간하여 농민을 대상으로 무료로 배부한 한글 신문이다. 타블로이드판 4면 주간지로서 창간 당시 80만부를 발간할 정도로 규모가 컸으나, 이후 여러 사정으로 격주 또는 월간으로 발간되기도 했으며, 부수도 1947년 들어서 30만부로 축소되었고 1948년 2월부터는 평균 7만 5천부 정도가 발행되었다. 지면 구성은 미군정의 주요 활동, 한국 및 한국 관련 국제뉴스, 정치교육, 영농교육, 가정란 등으로 이루어졌다.
『새힘』은 1958년 주한미공보원이 한국 농민에 대한 계몽과 선전을 위해 발간해 무료로 배포한 월간지이다. 한국전쟁 이후 미소 간의 냉전이 본격화되면서 미국은 자국의 우월성을 전세계적으로 선전하고자 하였고 이에 주한미공보원은 당시 가장 많은 인구 비중을 점하고 있던 농민을 대상으로 잡지를 발간하기 시작한 것이다. 주된 내용은 영농 관련 기사와 함께 미국에 대한 홍보, 반공 관련 글들이었다. 당시 농민 대상 잡지가 드물었다는 점에서 적지 않은 영향력을 행사하였다고 할 수 있다.
새힘
『새힘』은 1958년 주한미공보원이 한국 농민에 대한 계몽과 선전을 위해 발간해 무료로 배포한 월간지이다. 한국전쟁 이후 미소 간의 냉전이 본격화되면서 미국은 자국의 우월성을 전세계적으로 선전하고자 하였고 이에 주한미공보원은 당시 가장 많은 인구 비중을 점하고 있던 농민을 대상으로 잡지를 발간하기 시작한 것이다. 주된 내용은 영농 관련 기사와 함께 미국에 대한 홍보, 반공 관련 글들이었다. 당시 농민 대상 잡지가 드물었다는 점에서 적지 않은 영향력을 행사하였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