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1945년 12월 17일, 미군정청 공보부에서 창간하여 농민을 대상으로 무료로 배부한 한글 신문.
창간 경위
공보 담당 부서에서는 신문, 라디오, 영화, 포스터, 전단 등 다양한 매체를 사안에 따라 활용했다. 그 가운데서 대표적인 것은 도시민을 대상으로 발행한 『주간신보』[주간 Digest], 농민을 대상으로 한 『농민주보』[Farmer's Weekly]와 『주간 세계신보』[The World News] 등이 있었다.
구성과 내용
편집자는 1945년 12월 창간호부터 1947년 6월까지 시어도어(Augustus J. Theodore) 미 육군 대위였으며 후임은 에이다 리케(Miss Ada Leeke)였다. 창간 당시에는 소설가 방인근이 한국인으로서 주간을 맡았다. 방인근은 1930년대 대중 소설가로 유명한 사람이었으며 1940년대 매일신보와 방송국을 통해 일제의 전쟁 수행에 협력한 인물이었다. 그러나 『농민주보』 편집은 군정청 공보부장은 물론이고 군정장관과 주한미군사령관이 직접 공보 주제 등을 결정하는 경우가 많아 한국인 주간의 역할은 제한적이었다. 『농민주보』는 미군정이 발표한 성명서와 보도자료에 기반했고 한국인들의 역할은 주로 이를 번역하는 것이었다.
『농민주보』의 배포 체계는 주로 미군정 조직을 이용한 것이었으나 교통, 장비 등의 부족으로 원활하게 진행되기 힘들었다. 인쇄된 『농민주보』는 9개 도의 군정장관에게 전달되어 군정중대를 거쳐 군수, 그리고 각 면에 배포되는 게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교통체계 미비로 면 단위까지 전달이 쉽지 않았으며 또한 한국인 관리들의 관심 부족으로 그 이하 단위로의 배포도 곤란한 경우가 많았다.
회당 70여 건을 넘나드는 기사를 게재했는데, 총 4면의 지면 구성을 보면 제1면은 뉴스면으로 미군정의 주요 활동, 한국과 한국 관련 국제뉴스를 게재했고, 제2면은 민주주의를 비롯한 정치교육과 미군정의 정치적 방침을 홍보하고 선전하는 내용들이 주를 이루었다. 제3면은 영농 및 농업 교육 등 농사 관련 기사, 제4면은 가정란이었다. 가정란은 문화 관련도 포함되어 한글 맞춤법, 국사 강좌, 부인란, 어린이 차지 등이 배치되었다. 1면과 2면이 정치, 3면이 경제, 4면은 가정 및 문화를 담당하는 지면 구성이었다.
의의 및 평가
참고문헌
원전
- 『주한미군사 1~4』(국사편찬위원회, 2014)
논문
- 김승연, 이혜은, 「텍스트 마이닝을 활용한 미군정기 신문 『농민주보』의 담론 연구」(『한국연구』 13, 한국연구원, 2023)
- 박수현, 「점령기 미군정의 공보 활동과 선전 담론 : 미군정 발행 주간신문 분석을 중심으로」(서울대학교 박사 학위 논문, 2021)
- 정다운, 「주한미군의 선전활동과 『농민주보』」(서강대학교 석사 학위 논문, 2006)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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