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한민보』는 1947년 6월, 설의식, 백남교, 장인갑, 정규현, 문철민 등 중간파적인 입장을 가진 인물들이 창간한 신문의 성격을 띠는 잡지이다. 1947년 5월 제2차 미소공동위원회가 재개되면서 남북분단을 막고자 하는 중간파의 활동도 고무되었다. 이에 친좌익적이라는 비난 속에 1947년 3월 동아일보를 퇴사하게 된 설의식을 중심으로 과거 동아일보 동료였던 백남교, 정규현 등 중간파 성향의 인사들이 모여 창간한 것이다. 남북협상 지지 등 중간파적 보도 성향을 띠었으며 1950년 한국전쟁의 발발과 함께 종간되었다.
1947년 5월 21일 제2차 미소공동위원회가 재개되면서 좌우대립과 남북분단을 막고자 하는 중간파의 활동이 활성화된다. 이러한 상황 속에 동아일보 편집국장을 역임하고 해방 이후 주1로 큰 역할을 하던 설의식이 친좌익적이라는 비난 속에 1947년 3월 동아일보사를 퇴사하게 되면서 새로운 언론 창간을 모색하고 있었다. 과거 동아일보 동료인 정경부장 출신의 백남교, 사회부 차장 정규현, 평론부의 장인갑 등과 함께 조선인민보 사회부장 출신의 문철민이 동참하여 1947년 6월 15일 『새한민보』 창간호를 발행하게 된다. 창간 초기 사장 설의식, 편집인 장인갑, 사회부장 정규현, 편집부장 문철민 등의 진용을 갖추었다. 창간 후 오기영, 이갑섭, 백남진 등 중간파 성향의 지식인들이 주요 기고자로 참여한다.
열흘 간격, 즉 순간(旬刊)으로 발행하고자 했으나 실제로는 반월간과 월간으로 간행되어 신문과 잡지의 성격이 혼재되었다. 설의식은 신문적 잡지이자 또한 잡지적 신문이라고 설명하였다. 판형 역시 4×6배판으로 주2 판을 채택하던 여타 신문과 구별되기에 잡지적 성격을 띠었다.
지면의 특징을 보면 신문의 신문, 여론의 여론, 자료의 자료와 같은 고정란을 두어 여타 언론과 다른 독특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또한 대담방청이나 대담기 등의 코너를 통해 좌우 양측의 입장을 모두 보여주고자 하였다.
설의식은 신문의 주지를 자주조선, 민주조선, 청년조선의 건설을 위한 것이라 천명하고 창간사를 통해 주3의 자립자존과 문화의 독자성, 다수 대중을 위한 민주주의 등을 강조했다. 설의식은 권두언, 단평, 기타 논평 등 상당 부분을 집필하여 지면의 성격을 주도하였다. 논설, 시평 등의 글들은 대체로 중간파의 목소리가 반영되는 것이었다. 설의식은 동아일보 출신이기는 했지만 김구와 김규식의 남북협상을 지지하는 108인 문화인 성명에 참여할 정도로 중간파적 성향이 강했다. 설의식은 「남북협상을 성원함」이라는 성명서를 직접 작성하고 서명을 주도했다. 그는 좌우익의 대립을 극복하고 자주적 통일국가 수립을 주장하였다.
내외적으로 분단이 가시화되던 1947년 중반부터 좌우대립 극복과 통일국가 수립을 위한 중간파의 활동을 잘 보여주는 언론이었다. 또한 설의식은 언론이 각 당파의 대변자 역할 대신 사회적으로 약자인 대중의 입장에서 활동해야 함을 주장하여 민주적 언론상을 구축하고자 노력했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