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 문학계는 4·19혁명 이후 등장한 새로운 세대들에 의해 큰 변화에 직면하기 시작하였다. 순수 참여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고 주1에 대한 관심도 고조되었다. 이러한 분위기 하에 1962년에는 김승옥, 최하림, 김현 등의 주도로 훗날 『문학과지성』의 모태가 되는 동인지 『산문시대』가 창간되어 자유주의 성향의 새로운 세대의 등장을 알렸다. 1964년에는 주2이 만들어져 젊은 세대의 민족주의적 성향을 자극하였다. 1966년에는 시민문학을 내걸고 『창작과비평』이 창간되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 임헌영은 『창작과비평』이 식민지 시기 카프[KAPF]를 비롯해 전후 문학 등 참여문학의 전통을 제대로 계승하지 못하고 있음을 비판하며 근본적인 개혁과 근본적인 민족문학을 추구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분명히 하고자 했다. 이에 구중서, 백승철 등과 함께 기존 문학잡지의 한계를 비판하면서 『상황』을 발간하였다. 창간호는 딜레탕티즘, 낡은 세계관, 세속적 이권과의 타협, 차관 문화에 앞장서는 매판작가들을 주3 기생충으로 규정하고 토착정신의 원형 발굴과 민족의 얼을 되찾고자 한다고 천명하였다.
창간호는 소설과 시 평론을 비롯해 문학비평 논설을 중심으로, 신동엽 미발표 유고를 게재했는가 하면 마르쿠제의 글을 번역해 실었다. 임헌영은 창간호에 게재된 「예술론」(상)에서 역사의 얼이 빠져버린 오늘의 상황 속에서 그 얼을 되찾아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또한 민족의 얼을 지키며 시대적 상황의 증인이었던 시인을 찾아 소개하는 기획 코너로 「시, 시인의 고향」을 배치했는데, 첫 번째는 이육사와 그의 시 광야였다.
2호부터는 소외된 다수와 주4적 지배라는 현실을 비판하면서 민족의식과 함께 민중의식을 강조하기 시작했고 리얼리즘을 집중적으로 다루었다. 3호 역시 서구적 관념과 순수문학을 민족적 허무주의로 비판하고 권력이 아니라 민중에 주목할 것을 주장하였다. 즉 민족적인 전통의 형식과 역사의 상황을 내용으로 삼는 사실주의적인 길을 제시한 것이다. 7·4남북공동성명 이후 발간된 4호에서는 통일 문제의 중요성을 제기하였다.
1969년 8월에 범우사에서 창간호가 발간되었으나 2호 발간은 1972년 봄에 가서야 이루어졌고 출판사도 변경되었다. 2호부터 계간지로 개편되었고 지면도 대폭 늘어나 창간호는 100여 쪽에 불과했으나 2호는 200쪽 내외로 증가했다. 1974년 2월까지 7호가 발간되었으나 핵심 인물이었던 임헌영이 1974년 문인간첩단 사건으로 구속되면서 발간이 중단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