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문학은 문학이나 고급 문학의 대명사로 사용되기도 한다. 예술지상주의에 입각한 문학, 자율성과 자동성(自動性)으로서의 문학, 즉자적(卽自的)인 문학, 현실초월이나 도피의 문학 등의 뜻으로 풀이되기도 한다.
순수문학은 도구성(道具性)으로서의 문학에 반대하고, 특정인이나 특정이념을 위한 목적의식이 뚜렷한 문학에도 반대한다. 기본적으로 순수문학은 현실 참여문학에 대립되는 개념으로 인식되어왔다. 때로는 통속문학이나 대중문학으로부터 고급 문학이나 본격 문학을 지키겠다는 의지가 낳은 용어로 설명되기도 하였다.
문학의 미적·예술적 성격을 지키고자 한 ‘belles-lettres’, ‘die reine Literatur’ 등과 같은 서양의 용어가 있기는 하지만, 한국 문학에 있어서 순수문학은 그 의미가 훨씬 복잡한 편이다. 한국 문학사 속에서 순수문학은 시대를 초월하여 일정한 실체를 가지고 있었던 개념이기보다는 시대에 따라 의미가 조금씩 달라져 버린 개념이다.
광복 이전의 문단에서는 순수문학은 급진사조의 문학, 리얼리즘문학, 저항문학 등에 대립하면서 눈앞의 상황과 현실에 대해 되도록 관심을 두지 않으려는 태도로 구현되었다. 광복 직후 문단이 좌우로 갈라져 있었을 때에는 주로 우익 문인들이 ‘문학의 순수성’이나 ‘이데올로기로부터의 독립성’을 주장하는 가운데 우파의 문학을 순수문학으로 부르기도 하였다.
1960년대에 들어서면서 순수문학은 참여문학(engagement literature)에 찬성하지 않거나 부정하는 입장에 있는 문인들을 하나로 묶었다. 그리고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순수문학은 민중문학·시민문학·리얼리즘문학 등과는 반대편에 서게 되고, 민족문학과는 별개의 정신적 지향점과 방법론을 가지는 것으로 해석되기에 이른다.
이 때까지만 해도 한국 문학은 순수·참여의 대립구조도 인식될 수 있었던 만큼 아직도 순수문학이란 용어에는 힘이 있었고 실체성이 있었으나, 1980년대에 들어와서는 민중문학의 확산과 득세로 말미암아 순수문학이란 말은 전 시대만큼의 설득력을 갖추지 못하게 되었다.
1980년대에 이어 1990년대에 들어와서도 순수문학은 소수 문학의 위치를 벗어나지 못하게 되었다. 1990년대에도 한국 문학은 여전히 대승 문학과 소승 문학으로 분할되었지만 순수문학이란 용어는 듣기 어려운 지경이 되고 말았다.
이처럼 순수문학이란 용어는 그때 그때의 문학정신을 좌우하는 역사적 상황이나 정치적 분위기에 따라 그 의미가 재편성되는 것이다.
순수문학의 기본적인 태도는 미나 예술성의 강조, 현실이나 상황에 대한 무관심과 초월의지, 무목적성, 자율성 등으로 설명될 수 있다. 바로 이러한 태도가 어느 시대에서건 또 어떤 상황에서건 최선의 선택이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순수성이라는 말 자체가 시대에 따라 또 시각이나 입장에 따라 여러 가지 뜻으로 해석될 수 있는 것처럼, 순수문학이라는 용어도 명료하게 규정하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
‘순수’라는 말 자체는 분명 긍정적인 것이긴 하나, 순수문학의 역사적 용례는 긍정적인 평가만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우리의 문예비평사는 1930년대 말 이래로 지금까지 결국 무승부로 끝나고 만 여러 차례의 순수·비순수논쟁이 있었음을 잘 보여준다.
“순수란 모든 비문학적인 야심과 정치와 책모를 떠나 오로지 빛나는 문학정신만을 옹호하려는 의연한 태도(文章, 1939.6.)”라고 순수문학을 미화한 유진오(兪鎭午) 및 김동리(金東里)·김환태(金煥泰)·이원조(李源朝) 등이 전개한 순수 논쟁이 있다.
그리고 1963년 10월호에서 1964년 2월호까지 ≪현대문학≫에서 김병걸(金炳傑)·김우종(金宇鍾)·이형기(李炯基) 등이 벌인 순수문학 논쟁, 1967년 ‘문학과 사회참여’라는 큰 제목 아래서 김붕구(金鵬九)·임중빈(任重彬)·선우휘(鮮于輝)·이호철(李浩哲)·김현(金炫) 등이 펼친 공방전, 1968년 ≪조선일보≫에서 이어령(李御寧)이 순수문학의 입장에서, 김수영(金洙暎)이 참여문학의 입장에서 두세 번씩 글을 주고받으며 전개하였던 순수·참여논쟁 등이 그 좋은 예이다.
1970년대에 와서도 순수·참여논쟁은 알게 모르게 여러 사람들 사이에서 계속되었다. 순수문학이라는 용어와 그 뜻은 ‘순수·참여논쟁’을 통해서 더욱더 분명하게 부각될 수 있었다. 순수·참여논쟁은 순수문학과 참여문학의 한계를 드러내는 계기가 되면서 동시에 문학기능의 다양성을 확인시켜주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1960년대의 우리 나라의 참여문학론자들에게 일종의 원천으로서의 영향력을 행사하였던 프랑스의 사르트르(Sartre, J. P.)가 앙가주망(engagement)문학의 존재가치를 역설하는 가운데 플로베르(Flaubert, G.)·발자크(Balzac, H.)·프루스트(Proust, M.)·공쿠르(Goncourt) 형제 등의 작가들을 향하여 ‘납골당지기’, ‘부르주아의 사냥개’라고 독설을 퍼부은 것은 순수문학의 범위와 성격을 파악하는 데 좋은 참고가 된다.
순수문학 측이 참여문학 측을 향하여, 또 거꾸로 참여문학 측이 순수문학 측을 향하여 비판한 내용을 종합해보면 순수문학의 정신과 방법론을 짐작하게 된다. 순수 측은 참여 측을 향하여 소재주의·편내용주의·도식주의라고 공격하였고, 반대로 참여 측은 순수 측에게 형식주의·문법주의·도피주의·이기주의·소시민근성 등의 비판을 가하였다.
말하자면 순수문학은 내용과 형식, 미와 진(眞), 논리와 신념 등을 조화로운 상태로 이끌어 보겠다는 명분에서 출발한 것이기는 하나, 자칫하면 형식주의·도피주의·이기주의 등과 같은 함정에 빠지기 쉽다는 것이다.
순수·참여 시비가 주로 시인들 사이에서 빚어졌던 것처럼, 또 주로 시 양식을 재료로 삼았던 것처럼 순수문학은 순수시(pure poetry)로 대치되어도 무방할 것이다. 다시 순수시는 이른바 ‘무의미의 시’와 개인·초월성·영원성 등으로 관심을 모은 시로 대별해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