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tendency, tendenz)’이란 말은 ‘무엇인가를 가지려 하다’라는 뜻을 지닌 것이다. 심리학에서는 경향을 ‘습관적으로 또는 감각적으로 일정한 대상에 대해 병적 애정(pathologische Liebe)의 증상을 보이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경향의 형태는 특히 윤리적·정치적·사상적·미적인 측면에서 더욱 뚜렷하게 나타나는 속성을 지닌다. 경향은 광의로는 일정한 ‘신념·주의·이상·사조 등을 지향하는 것’이 되며, 협의로는 ‘사회주의사상 쪽으로 기울어진 상태’를 뜻한다.
1920년대 한국 문단에서 유행어가 되었던 ‘신경향파문학’이란 용어는 광의로 쓰인 것이며, 이에 비해 ‘경향문학’이라는 용어는 협의로 쓰인 것이라고 볼 수 있다.
1920년대 전반기의 한국 문단에 ‘경향’이란 용어를 처음 소개하였던 박영희(朴英熙)는 ‘경향문학’보다 ‘신경향파문학’이란 용어를 자주 썼다. 이 점에 있어서는 백철(白鐵)도 마찬가지다. 박영희는 신경향파문학이란 말을 사회주의 색채를 띤 문학이라는 뜻과 신흥 문학, 신사조(新思潮)의 문학이라는 뜻을 섞어서 사용하였다.
박영희가 ‘경향’의 의미에 대해 구체적인 정의를 내린 것은 이 말이 유행된 지 몇 년 뒤에 발표한 글 「신경향파문학과 그 문단적 지위」(개벽 64호, 1925.12. )에서였다.
그 당시 문인들 사이에서는 별다른 구별 없이 혼용되었다. 1920년대 후반기에 들어서면서 경향문학 또는 신경향파문학(Tendenzdichtung, Tendenzliteratur)이라는 용어는 자취를 감추기 시작하였다.
그 대신 프로문학·카프문학·무산자문학·계급문학·빈궁문학·마르크시즘문학·사회주의문학·노동문학·이데올로기문학 등의 용어가 새로 등장하여 무분별하게 혼용되었다. 한편, 일본에서는 1922년 이후 ‘프로문예’라는 말이 사용되고, ‘경향문학’이나 ‘신경향파문학’이라는 말은 실제로 거의 쓰이지 않았다.
한국 문학사를 기술하는 과정에 있어서 경향문학은 대략 두 가지 관점에서 처리되어 왔다. 그 첫번째 관점은 박영희에 의해서 시작되고 백철에 의하여 굳어진 것으로, 경향문학을 이른바 프로문학의 예비 단계로 처리하는 태도이다. 사실상 이 관점은 지금까지도 거의 수정되지 않은 채 국문학자들 사이에서 하나의 공식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다.
박영희는 당시 여러 편의 평론을 통하여 ‘자연생장적(自然生長的)’인 신경향파문학은 ‘목적의식적’인 무산자문학으로 전환되어야 할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그에 의하면 신경향파문학은 빈궁과 고뇌의 생활상을 자연주의적 수법으로 그려내는 것이며, 무산자문학은 빈궁과 고뇌의 생활 상태에 빠진 사람들에게 투쟁 의식과 반항 의식을 심어주려는 목적을 분명하게 지녔던 것이다.
또한, 그는 「신경향파문학과 무산자의 문학」(朝鮮之光 64호) 같은 글을 통해서 신경향파문학의 특징을 ‘허무적·절망적·개인적’인 것으로 규정하고, 무산자문학의 특징을 ‘성장적·집단적·사회적’인 것으로 설명하였다.
그리고 신경향파문학에서 무산자문학으로 발전적 전환이 필요함을 역설하였다. 백철은 신경향파문학이 프로문학으로 전환하게 된 계기를 카프 결성이라는 사실에서 찾았다.
카프에 가담하여 이른바 프로문학의 진영에서 활동하던 문인들은 프로문학이 결국 신경향파문학의 지향점임을 또 그렇게 되어야 함을 한결같이 주장하였던 것이다.
또 하나의 관점은 경향문학을 아예 프로문학의 대명사나 동의어로 보자는 태도이다. 경향문학과 프로문학 사이의 구분은 이론상으로는 충분히 가능하나 실제 작품을 통하여 볼 때 그러한 구분은 쉽지 않다.
경향문학의 활동은 특히 평론 분야와 소설 부문에서 많이 전개되었으며, 실제 작품보다는 이론이 훨씬 승(勝)한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경향소설의 주요 작가와 작품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최서해(崔曙海)의 「고국(故國)」(朝鮮文壇, 1924.10.)·「탈출기(脫出記)」(朝鮮文壇, 1925.3.)·「기아(飢餓)와 살육(殺戮)」(朝鮮文壇, 1925.6.)·「홍염(紅焰)」(朝鮮文壇, 1927.1.), 박영희의 「정순(貞順)의 설움」(開闢, 1925.2.)·「산양개」(開闢, 1925.4.)·「지옥순례(地獄巡禮)」(朝鮮之光, 1926.11.) 등이 있다.
또 김기진(金基鎭)의 「붉은 쥐」(開闢, 1924.11.)·「젊은 이상주의자(理想主義者)의 사(死)」(開闢, 1925.7.), 이기영(李箕永)의 「가난한 사람들」·「쥐이야기」·「실진(失眞)」·「원보(元甫)」, 조명희(趙明熙)의 「저기압(低氣壓)」(朝鮮之光, 1927.3.)·「한여름 밤」(朝鮮之光, 1927.5.)·「낙동강(洛東江)」(朝鮮之光, 1927.1.), 주요섭(朱耀燮)의 「인력거꾼(人力車軍)」(開闢, 1925. 4.)·「살인(殺人)」(開闢, 1925.6.)·「개밥」(東光, 1927.1.) 등이 있다.
또 송영(宋影)의 「석공조합대표(石工組合代表)」(文藝時代, 1927.1.)·「선동자(煽動者)」(開闢, 1926.3.) 등이 있다. 경향시로는 이상화(李相和)의 몇 작품과 「무산자(無産者)의 절규」·「생장의 균등」 등을 중심으로 한 김석송(金石松)의 많은 작품을 들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