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신보』는 1945년 10월 15일 미군정 공보부가 정책 홍보를 위해 창간한 국한문 혼용의 주간 신문이다. 타블로이드 2면의 9단 지면으로 제작되었으며 창간호 40만부에 이어 1946년부터는 80만부를 발행해 전국으로 배포하였다. 1947년부터는 서울판을 따로 제작할 정도로 도시민에 집중하였다. 미군정의 기관지 성격이었기에 주로 미군정의 정책과 활동을 중심으로 세계 뉴스를 비롯해 다양한 기사를 게재하였다. 1947년 4월 용지 부족을 이유로 정간되었으나, 이후 재발행되지 않아 사실상 폐간된 셈이었다.
타블로이드주1 2면으로 발행되었고 각 지면은 9단으로 구성되었다. 기사는 국한문 혼용으로 작성되었으며 민간 신문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신문의 형식을 제대로 갖추고 있었다. 창간호는 40만 부가 발행되었고 1946년 1월부터는 80만부를 발행했다. 인쇄된 신문은 우편을 통해 지방으로 보내졌다. 지방 배포는 행정기관과 마을 지도자를 통해 이루어졌는데, 여러 문제점들이 노정되어 경찰, 학교를 통하기도 했고 경우에 따라서는 식량 유통경로가 이용되기도 하였다.
지면 구성을 보면 1면은 기사, 해외 소식, 삽화로 구성되었고 군정당국의 성명서와 군정청 각 부서의 보고가 기사 형식으로 게재되었다. 해외 기사는 단신인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삽화는 교육, 보건, 주택 등 군정의 캠페인을 홍보하는 것들이었다. 2면은 논설, 주간문답, 만화를 기본 구성으로 하여 군정의 한국인 관료에 대한 주3, 주2, 국사관련 기사 등이 시기에 따라 다양하게 편성되었다. 군정의 공식 기관지 역할을 했기에 기사 내용은 군정의 활동을 적극 홍보하고 선전하는 것으로 채워졌다.
1946년 여름부터 1947년 4월 폐간될 때까지 황해도에서 태어나 한국 거주 경험이 있고 민정 교육을 이수한 아다 리크(Ada E. Leeke)가 편집 책임을 맡았다. 그녀는 1945년 10월부터 공보부 정치 분석가로 있으면서 한국인 정치가와 한국 정세 분석을 담당하였고, 러치 군정장관의 연락장교로도 일했다. 영어로 작성된 군정의 보도 자료, 세계 뉴스, 사설들을 편집한 다음 한국인이 번역하여 게재했다. 한국인이 기사를 작성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었다.
도시민을 주 독자층으로 삼았으나 실질적으로는 서울의 독자를 가장 중시해 1947년 1월부터는 서울판이 별도로 제작되었다. 1947년 4월 용지 부족을 이유로 정간되었고, 1947년 6월부터 주간으로 발행되기 시작한 『세계신보』가 그 역할을 이어받았다.
해방 직후 미군정의 정책 방향과 활동상을 보여주는 자료이다. 그러나 한국에서 발행되는 신문이었음에도 한국인은 편집 과정에 거의 관여할 수 없었으며 미군정의 입장이 일방적으로 관철되는 신문이었다. 또한 주간 신문이었기에 사실보도보다는 사안에 대한 미군정의 해석과 분석이 주된 기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