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 이전의 한국 삽화는 주로 목판삽화가 대부분이었다. 이는 예술의 한 장르로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고 고인쇄기술의 발전에 따른 서적의 발전사의 한 흐름 속에서 생성되고 발전되어왔다.
우리 나라 판화본의 시초로 보는 것은 1007년의 간기(刊記)를 가지고 있는 ≪보협인다라니경 寶篋印陀羅尼經≫이다. 여기에 나타나는 변상도(變相圖)는 가로 10㎝, 세로 5.4㎝의 작은 그림이지만, 1007년(統和25, 고려 목종 10)의 간기가 들어 있고 형태도 완전무결하며 총지사의 주지인 홍철(弘哲)이 발원한 것임이 명기되고 있다.
그림의 내용은 세존이 무구정광(無垢淨光)의 바라문가(婆羅門家)로 공양차 인도되는 장면을 그린 것인데, 중국 총지사(摠持寺)판의 묘사보다 나은 편이다. 초조대장경에 편입된 송(宋) 황제의 ≪어제비장전 御製秘藏詮≫은 중국의 북송판을 저본(초고)으로 하면서도 독자성을 살려 그려내고 있다.
이어 고려 판화 중 가장 정교한 것은 현재 남아있는 주본(周本) 및 진본(晉本) 화엄경(華嚴經)의 48판 96장의 대판 변상도를 비롯한 ≪불설예수시왕경 佛說預修十王經≫·≪영산설법도 靈山說法圖≫·≪아미타여래삼존상 阿彌陀如來三尊像≫이 간행되었다.
≪화엄경≫ 2권의 진본 변상도는 웅장하고 장엄한 구도와, 통통한 얼굴과 가늘게 찢어진 눈매를 가진 인물의 모습에서 당시의 표현기법을 볼 수 있다. 인물들의 자세는 고려 목판불화가 대부분 그렇듯이 측면을 향해 한가운데로 얼굴을 돌리고 있으며, 의습(衣褶)은 옷자락을 뭉텅 뭉텅 한 덩어리로 표현하고, 부처의 주위로 흩어지는 보배꽃은 장식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화엄경≫ 6권의 주본 변상도는 진본에 비해 훨씬 힘차고 짜임새 있는 표현을 보여준다. 살이 통통하고 선이 약한 진본에 비해 인물의 눈동자는 두드러지고 얼굴형도 길어졌다. 흐느적거리는 구름은 마치 꽃처럼 한 덩어리씩 피어나듯이 나무결을 따라 부드러운 곡선으로 표현하였다.
1246년(고종 33) 간행의 ≪불설예수시왕경≫ 중에서 제8장면의 변상도를 보면, 인물의 살은 통통하고 눈썹은 치켜올려 떠서 위엄 있게 표현되었고, 옷주름은 삐죽삐죽 늘어뜨리는 식으로 표현하였다.
1363년(공민왕 12)의 ≪금강경≫ 변상도는 길이가 40여m나 되고 장마다 위에는 그림, 아래에는 경문을 찍은 것인데, 법계(法戒)라는 화승(篋僧)의 이름이 있으며 남원에서 간행하였다.
후광이 비치는 건물, 석가 5존 등이 세밀하면서도 유려한 필치로 묘사되어 있는데 ≪금강경≫의 내용이 그림으로 묘사되어 있다. ≪화엄경≫의 진본이나 주본에서처럼 구도의 짜임새가 없다.
같은 시기의 작품으로 1378년의 ≪부모은중경 父母恩重經≫이 있는데, 역시 고려 판화의 특징이 나타나 있다. 이와 같이 고려 목판불화는 구도상으로 협시(脇侍:불상의 좌우에 모시고 서 있는 형태로 세우는 상(像))들을 거느리는 판화의 경우, 상단에 주인공인 석가본존을 크게 강조하고 밑에는 대좌를 중심으로 협시들을 배치하고 시선을 본존으로 모으기 위해 본존으로 갈수록 퍼지게 하였다.
14세기 이후에는 이러한 구도는 본존으로 갈수록 좁아지거나 협시들을 지나치게 작게 하는 경향들도 나타나며, 풍만한 얼굴이나 원만하면서 박진감이 느껴지는 의습이 상시되는 경향을 볼 수 있다.
초기에는 원만하면서도 힘 있는 선이 날카롭게 번득이고 뾰족하면서도 사경의 그림에 흔히 나타나는 꼬불꼬불한 선과 옷자락이 바람에 날리는 오대당풍(吳帶唐風)적인 성격도 나타난다.
조선시대의 목판삽화는 삼기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첫째, 조선 초기는 1392년(태조 1)부터 1550년(명종 5)까지이고 둘째, 조선 중기는 1551년부터 1700년(숙종 26)까지이며 셋째, 조선 후기는 1701년부터 1910년 한일합방까지이다.
첫째, 조선 초기에는 태조가 건국한 이후부터 문정왕후(文定王后)가 수렴청정(임금이 어린 나이로 즉위하였을 때 왕대비나 대왕대비가 정사를 돌보는 일)을 거두고 명종이 왕권을 행사할 때까지의 기간으로 이 시기에 삽화가 나타나는 것은 우선 1428년(세종 10), 1510년(중종 5)의 ≪삼강행실도 三綱行實圖≫, 1514년의 ≪속삼강행실도 續三綱行實圖≫, 1516년의≪이륜행실도 二倫行實圖≫ 등 유가의 교화를 위한 서적에 나타난다.
이들 삽화의 특징을 보면 15세기는 선이 유려하고 구도가 안정되어 있으며 표현이 매우 사실적인 데 비해, 16세기는 선의 유려함이나 안정되고 여유 있는 여백의 아름다움은 많이 상실되어 있다.
불가서적에는 ≪십륙관경도 十六觀經圖≫와 ≪법화경 法華經≫ 및 ≪불설대목련경 佛說大目蓮經≫ 등에서 삽화가 나타난다. ≪십륙관경도≫는 정토종(淨土宗)의 근본성전인 관무량수경(觀無量壽經)의 16가지 관법으로 극락세계의 수행방법을 나타내고 있는데, 조선 초기 목판삽화의 대표적인 전형을 이루고 있다.
가늘고도 강약을 겸한 각선(刻線)은 사실적인 묘사가 들어 있고, 부처나 주위 보살들의 천의는 바람에 나부끼는 오대당풍식으로 묘사하면서도 유려한 곡선으로 육체의 골격과 촉감을 세련되게 표현하였으며, 세부표현도 정성스럽고 의습이나 얼굴 표현이 자연스러워 경건한 마음을 갖게 한다.
≪법화경≫은 조선시대 가장 많이 유포된 경으로 변상도가 많이 들어 있다. 이들 경전에서는 주로 석가의 설법도를 중심으로 제자와 보살, 보배꽃과 구름 등을 볼 수 있으며, 이는 고려시대 변상도의 구도와는 달리 측면에서 정면 위주의 도상(圖上:지도나 도면의 위)적인 표현으로 바뀌고 있고, 선은 가늘어지고 힘이 없으며 인물들의 모습은 사실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불설대목련경≫은 초기의 것으로 1536년, 1546년의 간행본이 있는데, 이들 삽화는 섬세하고 유려한 판각기법에는 훨씬 못 미치는, 툭툭 끊어지는 선의 단순한 도각법에 머물고 있다.
문집에 나타나는 삽화의 형식으로는 초상화가 있는데, 1410년(태종 10) ≪포은집 圃隱集≫의 정몽주(鄭夢周) 초상은 회화에서처럼 섬세한 안면 묘사와 정신미를 보여주는 안광의 빛남은 없으나 우직한 선비의 명상하는 분위기와 성품의 원만함, 꿋꿋한 기개 등이 잘 표현되어 있다.
조선 중기는 명종이 문화정책에 큰 관심을 갖지 않았고, 임진왜란, 병자호란 등의 전란과 숙종연간의 정국혼란으로 국가재정이 피폐되고 서적의 간행도 활발하지 못하여 목판 삽화에 나타나는 기법도 초기에 비해 예술미가 훨씬 떨어진다.
이 시대의 목판 삽화로 대표적인 것은 1617년의 ≪동국신속삼강행실도 東國新續三綱行實圖≫, 1608∼1623년(광해군연간)의 ≪기자지 箕子志≫, 불교 분야의 ≪부모은중경 父母恩重經≫·≪석씨원류 釋氏源流≫·≪묘법연화경 妙法蓮華經≫등이 있다.
≪동국신속삼강행실도≫는 광해군의 명에 따라 당시 유명한 화가였던 김수운(金水雲)·이신흠(李信欽)·김신호(金信豪) 등에 의해 원화가 그려졌다. 이 삽화는 태세(太細)의 변화와 설득력 있는 구도로서 회화보다는 판화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태세에 변화가 없는 각선이나 언덕을 굽이쳐 흐르는 강물의 표현은 조선 초기 이래의 양식화된 물결과 다르게 배 주변에 파문이 많이 번지게 하는 물 표현기법 중에서는 가장 뛰어난 목판삽화이다.
≪기자지≫에 들어 있는 <답미자도 答微子圖>는 조선 중기의 대표적인 작품이다. 이 삽화는 불에 타는 인물의 손을 과장되게 표현함으로써 동적인 느낌을 주며, 화면 중간의 돌담을 경계로 화면의 상하가 대칭되게 배치해 구도상으로 현대 감각을 풍길 뿐 아니라 판각기법도 모든 선이 날카롭게 표현되어 판화미의 특징을 잘 나타내고 있다.
≪부모은중경≫은 조선 중기에 가장 유행했던 경전의 삽화로 40여 종류가 된다. 이 경전의 삽화는 21장의 장면에 걸쳐 부모의 은혜를 찬양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을 들면, 1534년 광주 서석산(瑞石山)의 도솔암본은 간결하면서도 구도가 안정되어 있다. 집의 묘사는 입체감을 넣고, 인물은 코를 강조하여 표현하였으며, 옷주름은 직선으로 표현하였다.
인물 표현에 있어서는 1546년본이 으뜸이다. 1592년본은 다른 판본에 비해 가는 선으로 세세하게 표현하였고, 기하학적인 장식선이 많다. 1689년본은 주제만을 강조한 다른 판본들에 비해 좀더 원만한 공간감을 취하고 있다. ≪석씨원류≫는 부처님의 생애를 400장면 속에 나누어 담아 관념의 세계와 현실의 세계를 동시에 나누어 표현하였다.
1665년본은 태세의 표현이나 율동감 있는 유려한 선의 묘사는 있으나, 바다 표현 이외의 산수 표현은 치졸하며 초기의 정교하면서도 아름다운 판화미는 상실되어 있다. 1675년본은 호랑이가 많은 숭산 소림사에서의 불교 전파 행적을 그린 것인데, 구도가 잘 짜여져 있고 화면의 여백을 화면 중앙에 배치해 거기다가 주된 내용을 묘사하면서도 사실적인 표현에 주력하려 한 흔적이 보인다.
≪묘법연화경≫은 초기 이후 중기에도 많이 간행하였는데, 대부분 초기에 비해 비례가 많지 않고 판각기법도 많이 뒤떨어진다.
조선 중기 판화의 성격을 잘 나타내주는 것 중에는 1631년(인조 9)과 1652년(효종 3)의 간본이 있다. 이 목판삽화의 내용은 임진왜란 때 이전(李典)이 동생 이준(李埈)을 구해준 이야기를 첨부한 것인데, 이 삽화의 특징은 산의 표현이다. 산의 윤곽선을 꾸불꾸불 반복하였는데, 산의 중량감은 없으나 그림으로서의 추상적인 분위기를 표출하고 있다.
조선 후기는 왕정의 문란과 각지의 민란, 세도정치, 외침 등이 있어 혼란을 거듭하였으나 후기 전반에는 영조·정조의 문화정책에 힘입어 많은 서적이 간행되었다.
이 시기에는 서민 경제가 안정되어 민화(民畫)가 유행되었고, 초기에 유행하였던 주자학이 쇠퇴하고 의학이나 농학 등의 실학저서가 활발하여 목판삽화의 범주가 다양해졌다. 또한 한글로 쓰여진 서민소설이 유행하여 소설 내용과 관련된 삽화가 판도(版圖)로서 삽입되었다.
이 시대의 흐름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목판삽화들을 들면 다음과 같다. 1730년(영조 6)의 ≪삼강행실도 三綱行實圖≫, 1796년(정조 20)의 ≪오륜행실도 五倫行實圖≫와 ≪부모은중경 父母恩重經≫, 1861년(철종 12)의 ≪한묵유방시 翰墨流芳詩≫, 1880년(고종 17)의 ≪금강반야바라밀경 金剛般若波羅蜜經≫, 1896년의 ≪심상소학 尋常小學≫등이 있다.
이 중 ≪삼강행실도≫는 구름을 회화적인 기법으로 표현한 것과, 언덕을 사실적으로 완만하게 처리한 것, 왜병의 옷에 무늬를 없앤 것과 같은 기법은 전기와 비교하여 보면 완연하게 다르다.
1796년의 ≪오륜행실도≫와 ≪부모은중경≫은 조선 후기의 목판삽화에서 비중이 큰 것인데, 전자는 단원(檀園)김홍도(金弘道)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준법(皴法)·수법(樹法)·파도·괴석 등이 자주 나와서 그 밑그림은 단원의 필법을 방불케 한다.
후자는 수원의 용주사본(龍珠寺本)으로 종래까지 밑그림을 김홍도가 그린 것으로 알려져 왔으나, 근래에 발견된 탱화의 간기에 따라 용주사의 한 화승의 작품으로 판명되었다.
이 작품은 기교가 상당히 뛰어나며 여백을 많이 두어 원경과 근경의 관계를 조화시키려고 했는데, 무리가 없이 사실적으로 표현되어 회화에 가까울 정도로 정교한 판각기법을 보여주고 있다. 선에 힘이 없고 정신미가 결여된 것이 흠이라 할 수 있다.
1861년의 ≪한묵유방시≫는 근경은 세부적인 표현을 하고 원경은 마치 설경인 듯 일체의 표현을 간략화 시킴으로서 비스듬한 언덕 아래 강에 띄워져 있는 돛단배와 수풀 속의 집은 퍽 정적인 동양화의 수묵효과를 낳고 있다.
1880년의 ≪금강반야바라밀경≫은 정조연간에 들어온 서양기법을 사용한 것처럼 인물의 비례는 팔등신을 넘을 듯 얼굴이 작아지고 갑옷 밑으로 내비치는 다리 또한 길고 늘씬하다.
도상적인 표현으로 보아도 위타천(韋馱天)은 천리를 단숨에 달릴 듯한 억센 체구로 표현되겠지만 여기서는 조선 말기의 사회나 풍속에서 영향을 받은 화법이 혼합되어 있는 듯 하다.
1896년 소학교 교본인 ≪심상소학≫은 갑오경장을 계기로 일본에서 들어온 교과서로 서양화풍에 충실한 작품이다. 화면 한 곳에 맞춘 듯 교탁과 아동들의 책상의 정면, 측면의 선들이 방사형으로 집중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