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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지(어제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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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이 직접 저술하거나 왕명을 받아 편찬한 문서 또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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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왕이 직접 저술하거나 왕명을 받아 편찬한 문서 또는 책.
내용

‘성제(聖製)’ 또는 ‘성작(聖作)’이라 하기도 한다. 왕과 왕비가 직접 저술하거나 승정원의 승지, 예문관·집현전·홍문관의 직(職)으로서 지제교(知製敎)의 직을 겸한 문신들, 어제편차인(御製編次人) 그리고 규장각의 각신(閣臣)들이 왕명을 받은 경우에는 그 대상이 된다.

왕이 직접 편찬한 서적은 고려시대의 경우 ≪예종창화집 睿宗唱和集≫과 ≪용루창화집 龍樓唱和集≫이 문헌상으로 전한다.

조선시대의 경우 편찬의 양이 많은 순으로 중요한 것만 대략 들어 보면, 영조 어제 81종, 정조 어제 19종, 순조 어제 5종, 숙종·고종 어제 2종, 세조·중종·성종·인종·현종·경종·철종·순종 어제가 각각 1종이고, 이 밖에 추존임금으로 문조(文祖)가 3종, 장조(莊祖)가 1종을 남기고 있으며, 왕비로는 유일하게 소혜왕후(昭惠王后)가 1종을 남기고 있다.

승정원의 승지가 편찬하는 것은 유지(有旨)인데, 담당 승지가 왕명을 받아 그 내용을 작성하여 서사하고 직함(職銜)과 성(姓)을 쓰고 수결(手決)을 하여 피명자(被命者)에게 전달하는 왕명서이다. 예문관·집현전·홍문관의 직으로서 지제교의 직을 겸한 문신들은 사명(詞命:왕명)의 제찬(制撰)을 맡게 되는데, 이에는 두 종류가 있다.

홍문관 부제학 이하 부수찬까지의 관원은 으레 지제교의 직을 겸임하니 그것을 내지제교(內知製敎)라 하고, 또 별도로 6품 이상의 문관을 초계(抄啓:인재를 뽑아 천거함)하여 지제교를 겸임시키니 그것을 외지제교(外知製敎)라 한다.

이들은 정사(政事)에 관한 교서(敎書)·윤음(綸音) 등을 기초(起草)하여 바치는 직무를 담당하였다. 어제편차인이 편찬을 담당한 경우는 영조 때 있었다. 영조는 역대 국왕 중 가장 많은 저술을 남겼는데, 왕은 필요에 따라 어제편차인을 정하고 이들에게 대찬(代撰)을 시켰다. 이들에 의하여 이루어진 것은 중요한 것만 들어도 80종이 넘는다.

규장각 각신들이 왕명을 받아 어제를 편차(編次:순서를 따라 편집하는 일)하기 시작한 것은 정조 때 규장각이 설립되면서부터이다. 정조는 즉위 후 영조가 어제편차인을 두고 어제를 편차한 데 관심을 두고 이를 제도화시키려 하였다.

이에 따라 명나라의 내각(內閣)이 관장하던 어집찬수(御集纂修) 제도를 본받아 규장각의 편서지법(編書之法)을 규정하고, 이 규정에 의하여 도서를 편차하도록 하였다.

그 중 어제지법(御製之法)은 왕의 제술을 편차하는 규정인데, 그 자세한 내용은 ≪규장각지 奎章閣志≫ 완성본 편차제4(編次第四) 회최(會稡)·선사(繕寫) 조항에 잘 나타나 있다.

회최조항은 규장각의 각신들이 어제를 유별하여 정리하는 규정이고, 선사조항은 사자관(寫字官)이 어제를 선사하여 각신의 고준(考準:원본과 대조하는 일)을 받고 다시 왕의 재가(裁可)를 거쳐 완료하는 과정을 규정한 것이다.

이러한 과정으로 편차된 어제서는 규장각이 폐지된 1910년까지 정조의 어제집 ≪홍재전서 弘齋全書≫ 184편 100책을 비롯하여 30여 종에 이른다.

이들 어제본 중 중요한 것을 주제별로 나누어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경부(經部)는 숙종 때 편찬된 ≪어제천자문서 御製千字文序≫를 비롯하여 정조조 초계문신을 교육하기 위하여 강의조문(講義條問) 중에서 선정한 경서강의류(經書講義類) 등이 있다. 사부(史部)는 조령류(詔令類)가 가장 많다.

조령은 천자(天子) 또는 왕의 칙명(勅命)·제고(制誥)·성훈(聖訓)·유지·유서(諭書)·돈유(敦諭)·윤음·책명(策命)·교서·새서(璽書)·사문(赦文)·비(批)·판(判) 등인데, 이 중 칙명·성훈·유지·유서·돈유·윤음·교서 등이 주종을 이룬다.

칙명에는 전한(前漢)과 후한(後漢)의 책제조칙(策制詔勅) 중에서 법 될 만한 것을 뽑아 엮은 ≪양한사명 兩漢辭命≫ 9권이 있다. 유지는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승정원의 승지가 왕명을 받아 작성하는 문서이다. 이는 실록 등 관찬문서나 등록류(謄錄類)에 실려 있지 않아 사료적인 가치가 높다.

유서는 왕이 각 지방으로 부임하는 관찰사·절도사·방어사(防禦使)·유수 등에게 왕과 담당 관원(官員)만이 아는 밀부(密符)를 담당 관원에게 내리는 명령서인데, 중간을 잘라 우부(右符)는 관찰사 또는 절도사에게 주고, 좌부(左符)는 대내(大內)에 보관하였다.

발병(發兵)·응기(應機) 등의 일이 있을 때 합부(合符)하여 간모(奸謀)를 방지하기 위하여 내리는 문서이다. 돈유는 왕이 청신(淸臣)을 훈유하기 위하여 내리는 문서로, 이 중 책으로 엮어진 것은 영조의 어제 ≪어제근정훈유 御製勤政訓諭≫ 1책을 볼 수 있다.

윤음은 국왕이 관리나 국민에게 내리는 글로, 내용은 권농(勸農)·척사(斥邪)·포충(褒忠)·구휼(救恤)·양로(養老)·독역(督役) 등 다양하다. 윤음은 많은 사람에게 널리 알릴 필요가 있는 것이기 때문에 인간(印刊)하여 반포하는 경우가 많았으며, 한글로써 하는 경우도 있었다.

교서는 국왕이 발하는 명령서·훈유서·선포문이다. 황제가 발할 경우 조서(詔書)라고 하며, 원(元)나라의 지배하에 들기 이전의 고려와 대한제국시대에는 조서라고 하였다. 교서의 종류는 매우 다양한데, 즉위교서(卽位敎書)·구언교서(求言敎書)·배향교서(配享敎書)·반사교서(頒賜敎書)·권농교서(勸農敎書) 등이 있다.

이 교서는 지제교의 직에 있는 문신들이 제진하는 것이며, 반사된 경우는 원문서(原文書) 그대로 전하여 보존하는 경우도 있지만 소수에 지나지 않고, 대부분 관찬문서나 문집 등에 전재된 경우가 많다. 그 중 책으로 엮어진 대표적인 것으로는 영조조에 당쟁의 폐해를 일소하기 위하여 편찬한 ≪어제대훈 御製大訓≫ 3종이 있다.

그 밖에 전기류(傳記類)에 관한 것은 총전(叢傳)·별전(別傳)을 포함하여 8종, 정서류(政書類)는 전례(典禮)에 관한 것과 추국안(推鞫案)에 관한 것이 각 1종, 지리류(地理類)는 고적(古蹟)에 관한 책이 1종 있다.

자부(子部)는 유가류(儒家類)가 으뜸이다. 영조 때는 경천(敬天)·애민(愛民)·예신(禮臣)을 바탕으로 자신을 독려하기 위해 엮은 ≪어제훈유 御製訓諭≫ 13종이 편찬되었다. 정조의 어제로는 ≪일득록 日得錄≫ 18권이 있는데, 이는 정사·인물·문학·평론 등을 포함한 것이다.

그 밖에 덕종비 소혜왕후 한씨가 저술한 ≪어제내훈 御製內訓≫ 3권 3책은 ≪열녀전 烈女傳≫·≪명심보감 明心寶鑑≫·≪소학≫ 등에서 부도(婦道)에 도움이 될 만한 것을 뽑아 7편으로 엮은 것이다.

음악류는 정조가 속악(俗樂)의 폐단을 시정하고자 율려(律呂)와 조화의 근원을 상고하고 제가(諸家)의 설을 참고하여 엮은 ≪시악화성 詩樂和聲≫ 10권이 있다. 집부(集部)는 별집(別集)과 총집(總集)을 합하여 40여 종 정도 편찬되었다.

고려시대의 ≪예종창화집≫과 ≪용루창화집≫은 현존하지는 않으나 김휴(金烋)가 엮은 ≪해동문헌총록 海東文獻總錄≫에 의하면, 당시 고려 왕실의 귀족사회를 낭만적으로 읊은 중요한 자료인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정조의 어제집 ≪홍재전서≫는 정조가 이룩한 근대 문예부흥의 사상사적 흐름을 일목요연하게 볼 수 있는 어제 중의 금보(金寶)이고, 인조 때 의창군(義昌君)광(珖)의 편간을 시작으로 계속 편찬하여 완성한 ≪열성어제 列聖御製≫ 104권 59책은 태조 이후 철종까지 엮어진 역대 제왕의 시문집을 총집록하고 있다.

이들 어제집은 정조의 어제에서 볼 수 있듯이, 규장각 각신이 대거 동원되어 이루어진 것도 있지만, 대부분 문신들에 의해 가필이 가해지기는 했어도 다른 주제 분야의 서적보다는 왕이 손수 저술했다는 성격을 가장 짙게 나타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참고문헌

『고려사(高麗史)』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
『대전회통(大典會通)』
『해동문헌총록(海東文獻總錄)』
『군서표기(群書標記)』
『규장각지(奎章閣志)』
『홍문관지(弘文館志)』
『한국고문서연구』(최승희,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81)
「장서각고(藏書閣考)」(천혜봉, 『동교민태식박사고희기념유교학론총(東喬閔泰植博士古稀記念儒敎學論叢)』, 1972)
「규장각의 도서편찬 간인(刊印) 및 유통에 관한 연구」(강순애, 성균관대학교박사학위논문, 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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