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달구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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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구벌 천도 계획은 689년 신라의 신문왕이 도읍지를 현재의 대구광역시인 달구벌로 옮기려 했던 계획이다. 신문왕은 경주 지역의 진골귀족세력을 벗어나 새 수도 건설을 통해 자신의 정치이념을 실현하려는 목적으로 천도를 추진하였다. 달구벌이 후보지가 된 것은 팔공산 등 큰 산이 있어 방어에 유리하고 교통이 편리한 지리적 요건과 농경지대에다가 낙동강을 통한 물자수송이 편리하다는 경제적 측면 외에도 경주와 가깝고 왕실세력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었다. 이 계획은 9주 5소경의 정비 이후 결정, 준비가 진행되다가 막대한 비용 부담과 진골귀족세력의 반발로 중단되었다.
달구벌 천도 계획 (達句伐 遷都 計劃)
달구벌 천도 계획은 689년 신라의 신문왕이 도읍지를 현재의 대구광역시인 달구벌로 옮기려 했던 계획이다. 신문왕은 경주 지역의 진골귀족세력을 벗어나 새 수도 건설을 통해 자신의 정치이념을 실현하려는 목적으로 천도를 추진하였다. 달구벌이 후보지가 된 것은 팔공산 등 큰 산이 있어 방어에 유리하고 교통이 편리한 지리적 요건과 농경지대에다가 낙동강을 통한 물자수송이 편리하다는 경제적 측면 외에도 경주와 가깝고 왕실세력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었다. 이 계획은 9주 5소경의 정비 이후 결정, 준비가 진행되다가 막대한 비용 부담과 진골귀족세력의 반발로 중단되었다.
염장은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무주별가를 역임한 장수이다. 생몰년은 미상이다. 장보고 휘하의 무장으로, 838년 장보고가 왕위계승분쟁에서 패배하여 청해진에 피신해 있던 김우징을 도와 반격군을 파견할 때 이순행·정년 등과 5000명의 군사를 이끌고 참여하여 신무왕 즉위에 일익을 담당했다. 이후 장보고가 자신의 딸을 문성왕의 왕비로 세우려고 중앙정부와 갈등을 빚자 중앙정부측에 가담했다. 염장은 장보고의 막하에 거짓 투항했다가 주연석상에서 그를 암살하고 돌아갔다. 그 대가로 아간(아찬)에 임명되어 이어진 장보고세력의 저항을 진압했다.
염장 (閻長)
염장은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무주별가를 역임한 장수이다. 생몰년은 미상이다. 장보고 휘하의 무장으로, 838년 장보고가 왕위계승분쟁에서 패배하여 청해진에 피신해 있던 김우징을 도와 반격군을 파견할 때 이순행·정년 등과 5000명의 군사를 이끌고 참여하여 신무왕 즉위에 일익을 담당했다. 이후 장보고가 자신의 딸을 문성왕의 왕비로 세우려고 중앙정부와 갈등을 빚자 중앙정부측에 가담했다. 염장은 장보고의 막하에 거짓 투항했다가 주연석상에서 그를 암살하고 돌아갔다. 그 대가로 아간(아찬)에 임명되어 이어진 장보고세력의 저항을 진압했다.
남북국시대 때, 이찬 관등으로 중시를 역임하며 신문왕의 왕권 강화 정치에 핵심인물로 활약한 통일신라의 관리.
원사 (元師)
남북국시대 때, 이찬 관등으로 중시를 역임하며 신문왕의 왕권 강화 정치에 핵심인물로 활약한 통일신라의 관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