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8년(신문왕 8) 1월 중시 대장(大莊)이 죽자, 후임으로 이찬(伊飡)인 그가 임명되었다. 그리하여 신문왕의 왕권강화정치에 핵심인물로 활약하였다.
즉, 같은 해 2월 선부(船府)에 장관 경(卿) 1인을 더 두어 2인으로 하였고, 이듬해 1월 녹읍을 폐지하고 녹봉제를 실시하였다. 또, 달구벌(達句伐 : 지금의 대구)로 천도하려고 계획하였다. 690년 2월 병으로 2년 1개월 만에 중시직을 물러나자, 아찬(阿飡) 선원(仙元)이 그의 후임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