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대부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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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사
인물
삼국시대 때, 신라 박제상의 부인으로 계림국대부인에 책봉된 열녀.
인물/전통 인물
출생 연도
미상
사망 연도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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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삼국시대 때, 신라 박제상의 부인으로 계림국대부인에 책봉된 열녀.
내용

충신 박제상(朴堤上)의 부인이다. 나물마립간의 셋째아들 미해(美海: 미사흔)가 10살에 왜(倭)에 볼모로 가서 30여년간 돌아오지 못하자, 눌지마립간 때 삽라군(歃羅郡: 경남 양산) 태수(太守) 박제상이 왜에 파견되어 기계를 써 미해를 밤에 몰래 탈출시키고 자신은 충절을 굽히지 않고 순절하였다.

미해가 귀국하자 왕은 감격하여 부인을 계림국대부인(鷄林國大夫人)으로 책봉하였다. 제상이 왜국으로 떠나갈 때 부인이 듣고 쫓아갔으나 만나지 못하고 망덕사(望德寺) 남쪽 모래 위에 이르러 드러누워 몸부림치며 통곡하였으므로 그 모래밭을 ‘장사(長沙)’라 하였다.

부인의 친척 두 사람이 부축하여 집으로 돌아갈 때 부인이 다리를 뻗고 일어나지 않고 울부짖던 곳을 ‘벌지지(伐知旨)’라 하였다. 오랜 뒤에도 부인이 사모의 정을 못이겨 세 딸을 데리고 치술령(鵄述嶺)에 올라가 왜국을 바라보고 통곡하다가 죽어 치술신모(鵄述神母)가 되었다 하며, 이 산에 부인을 기리는 사당을 세웠다.

참고문헌

『삼국사기(三國史記)』
『삼국유사(三國遺事)』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동경잡기(東京雜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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