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대동아공영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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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문학은 일제강점기에 일본의 식민주의 정책에 협조한 문학이다. 중일전쟁 이전에 조선총독부는 조선의 작가들로 하여금 특정한 내용을 다루지 못하도록 금지하곤 했지만, 특정한 내용을 다루라는 주문은 하지 않았다. 일제말에 이르면 조선총독부는 문학의 내용에 깊이 개입했다. 이 시기에 일본의 식민주의 정책에 이바지한 문학을 친일협력의 문학이라고 부를 수 있다. 내용적 측면에서는 자발적인 친일 협력을 통해 동아시아의 새로운 질서나 독립적 정체성을 찾으려고 했다. 친일 작가의 언어 선택에 따라 국민문학론, 이중언어론, 조선어 전용론으로 그 유형을 나눌 수 있다.
친일문학 (親日文學)
친일문학은 일제강점기에 일본의 식민주의 정책에 협조한 문학이다. 중일전쟁 이전에 조선총독부는 조선의 작가들로 하여금 특정한 내용을 다루지 못하도록 금지하곤 했지만, 특정한 내용을 다루라는 주문은 하지 않았다. 일제말에 이르면 조선총독부는 문학의 내용에 깊이 개입했다. 이 시기에 일본의 식민주의 정책에 이바지한 문학을 친일협력의 문학이라고 부를 수 있다. 내용적 측면에서는 자발적인 친일 협력을 통해 동아시아의 새로운 질서나 독립적 정체성을 찾으려고 했다. 친일 작가의 언어 선택에 따라 국민문학론, 이중언어론, 조선어 전용론으로 그 유형을 나눌 수 있다.
대동아문학자대회는 1942년∼1944년까지 일본제국주의가 대동아공영권 구상을 선전하기 위해 대동아공영권의 문학 건설이라는 기만적인 목표를 위해 개최한 문학 행사이다. 제1회 대회는 1942년 일본의 도쿄와 오사카에서 이광수, 유진오, 박영희 등이 참석해 열렸다. 제2대회는 1943년 일본 도쿄에서 열렸다. 이 대회에서 한국 측 대표로 유진오, 최재서, 유치진, 김용제 등이 참석하여 주최 측의 의도를 충족시키는 발표를 하였다. 제3대회는 1944년 중국 남경에서 열렸으며, 1945년 만주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제4회 대회는 일본의 패망으로 열리지 않았다.
대동아문학자대회 (大東亞文學者大會)
대동아문학자대회는 1942년∼1944년까지 일본제국주의가 대동아공영권 구상을 선전하기 위해 대동아공영권의 문학 건설이라는 기만적인 목표를 위해 개최한 문학 행사이다. 제1회 대회는 1942년 일본의 도쿄와 오사카에서 이광수, 유진오, 박영희 등이 참석해 열렸다. 제2대회는 1943년 일본 도쿄에서 열렸다. 이 대회에서 한국 측 대표로 유진오, 최재서, 유치진, 김용제 등이 참석하여 주최 측의 의도를 충족시키는 발표를 하였다. 제3대회는 1944년 중국 남경에서 열렸으며, 1945년 만주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제4회 대회는 일본의 패망으로 열리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