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동아문학자대회 ()

현대문학
의례·행사
1942년∼1944년까지 일본제국주의가 대동아공영권 구상을 선전하기 위해 대동아공영권의 문학건설이라는 기만적인 목표를 위해 개최한 문학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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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1942년∼1944년까지 일본제국주의가 대동아공영권 구상을 선전하기 위해 대동아공영권의 문학건설이라는 기만적인 목표를 위해 개최한 문학행사.
개설

일제가 서구 열강과의 전쟁을 치루기 위해 아시아 여러 국가를 하나의 연합체로 묶으려는 대동아공영권 구상을 선전하고 실천하기 위해 아시아 각국의 친일 문화인을 동원하여 개최한 문학행사로서, 1942년 11월부터 1944년 4월까지 3회에 걸쳐 일본과 중국 등지에서 열렸다.

연원 및 변천

제1회 대회는 1942년 11월 3일부터 10일까지 8일간 일본의 도쿄와 오사카에서 열렸다. 개회식은 11월 3일 도쿄의 제국극장에서 열렸으며, 본회의는 11월 4일∼5일에 대동아회관에서 열렸다. 본회의를 마친 후 대회 참석자들은 11월 6일부터 오사카, 교토 등지를 다니며 해군항공대 견학, 황궁참배, 강연회 등의 행사에 참석하고, 12일 교토에서 해산했다.

제2회 대회는 일본 도쿄에서 1943년 8월 25일부터 27일까지 3일간 개최되었다. 개회식은 8월 25일 제국극장에서 열렸으며, 본회의는 8월 26일∼27일 양일에 걸쳐 대동아회관에서 열렸다. 대회 일정을 마친 후 일행은 각종 강연회 참석과 신사 참배 등의 행사를 치루고 9월 5일 교토에서 해산했다.

제3회 대회는 1944년 11월 12일부터 14일까지 3일간 중국 남경에서 열렸다. 개회식은 11월 12일 손문의 무덤을 참배한 후 중독문화협회에서 열렸다. 11월 13일에는 오전에 본회의, 오후에 분과 회의가 열렸으며, 11월 14일에 폐회식이 열렸다. 대회 공식 일정을 마치고 일행은 상해, 북경 등지에서 강연회, 좌담회 등에 참석한 후 해산하였다.

제4차 대회는 1945년에 만주의 신경에서 열릴 예정이었으나 1945년 8월 일본의 패망으로 열리지 않았다.

행사내용

제1회 대회의 본회의 의제는 ‘대동아정신의 수립과 그 강화 보급’, ‘문학자에 의한 민족 및 국가간 사상과 문화의 융합 방책’, ‘문학의 대동아전쟁 완수 협력 방안’이었다. 이런 의제를 통해 이 대회가 목표로 하는 것이 대동아공영권에 대한 아시아 문화인의 정신적 귀의임을 짐작할 수 있다. 한국, 대만, 만주, 중국, 몽고 등에서 친일 문화인들이 대거 참가하였으며, 한국에서는 이광수, 유진오, 박영희 등이 참석하였다. 이광수는 자기의 모든 것을 천황폐하께 바치는 일본정신을 대동아정신의 기본정신으로 삼아야 한다고 역설하였으며, 유진오, 박영희 등도 일본 천황을 찬양하고 대동아공영권의 의미를 강조하는 발언을 하였다.

제2회 대회의 본회의 의제는 ‘결전정신의 앙양’, ‘미·영문화의 격멸’, ‘공영권문화 확립, 그 이념과 실천방법’이었다. 이 대회에 한국측 대표로 유진오(‘결전문학의 확립에 대하여’), 최재서(‘조선에 있어서의 징병제 실시와 문학운동’), 유치진(‘신극운동의 촉진’), 김용제(‘국민운동에 끓어오르는 조선문단’) 등이 참석하여 주최 측의 의도를 충족시키는 발표를 하였다. 장혁주는 일본 대표로 대회에 참석하였다.

제3회 대회의 본회의 의제는 ‘문학과 전쟁의 관계에 있어서 문학의 선전성과 그 방법론’, ‘동아 고유문화와 정신의 부활’, ‘대동아공동선언의 제3항 실천을 위한 방법론’, ‘대동아 제민족의 문화수준과 민족의식의 앙양’ 등이다. 이 대회의 한국측 대표는 이광수와 김팔봉이었다.

참고문헌

「소위 ‘대동아공영권’의 문화주의-‘대동아문학자대회’를 중심으로」(정창석, 『인문논총』, 경기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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