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cm. 232쪽. 시인의 자서와, 두 편의 시작 노트, 그리고 김성곤의 해설이 실려 있다. ‘거위시대’, ‘제목 없는 사랑’, ‘달걀 속의 생’, ‘서있는 평화’, ‘중심에 계신 어머니’의 5부로 나뉘어 76편의 작품이 수록되었다.
네 번째 시집인 이 시집에서, 시인은 기존 시집에서 보여주었던 절망적인 세계인식으로부터 벗어나서 세계에 대한 긍정적 시선을 정서적으로 정제된 언어를 통해 보여준다. 이런 변화는 시에 등장하는 소재들에서 강력하게 암시되고 있는데, 대표적인 것이 달걀, 아프락사스 등이다. 시인에게 달걀은 “미완성이 숨쉬고”(「달걀 속의 생 4」) 있는 공간, 모든 가능성이 숨 쉬고 있는 공간이다. 또한 아프락사스는 주지하다시피 『데미안』에 나와서 유명해진 소재로서, 현실의 한계를 넘어서서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는 자아성장의 상징이다. 달걀과 아프락사스는 고통스러운 현실 속에서 희망을 꿈꾸게 만들어, “압력이 부력(浮力)”(「아프락사스 4」)이라는 역설의 힘을 시인에게 가져다주는 존재이다. 이런 힘이 시인으로 하여금 “연등이 걸릴 무렵이면/ 난 삶을 사랑하고 싶어진다”(「연등이 걸릴 무렵」)고 말하게 하고, “말 속에서 미래를 꿈꾸는 버릇”(「모래내에서 연신내로」)을 가지게 만들었다. 그러나 시인이 달걀의 가능성을 꿈꾸면서 동시에 그것을 깨는 주체라는 존재론적 역설이 이 시집의 시들이 기계적 희망 읽기를 넘어서서 팽팽한 시적 긴장을 지니게 만든다.
이 시집은 김승희의 시적 세계가 이전의 폐쇄적인 세계에서 벗어나 비로소 보편적인 단계에 도달하였음을 알리는 표지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의의를 지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