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대외활동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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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A 원조는 1955년 이후 미국이 국제협조처(ICA)를 통해 한국에 제공한 경제 원조이다. 군사 원조와 구호 원조 중심으로 제공된 한국전쟁이 종결되자 한국군의 군사력을 유지할 수 있는 경제 능력을 갖출 수 있는 경제 원조가 중요해졌는데, 상호안전보장본부를 통해서는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없어 1953년 8월에 대외활동본부를 신설했고, 1955년 7월에는 대외활동본부를 대신하여 국제협조처를 설립하였다. ICA 원조는 방위지원의 성격이 강해 비계획 원조 중심으로 도입되어 삼백공업이 성장하는 배경이 되었다.
ICA원조 (ICA援助)
ICA 원조는 1955년 이후 미국이 국제협조처(ICA)를 통해 한국에 제공한 경제 원조이다. 군사 원조와 구호 원조 중심으로 제공된 한국전쟁이 종결되자 한국군의 군사력을 유지할 수 있는 경제 능력을 갖출 수 있는 경제 원조가 중요해졌는데, 상호안전보장본부를 통해서는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없어 1953년 8월에 대외활동본부를 신설했고, 1955년 7월에는 대외활동본부를 대신하여 국제협조처를 설립하였다. ICA 원조는 방위지원의 성격이 강해 비계획 원조 중심으로 도입되어 삼백공업이 성장하는 배경이 되었다.
충주비료공장은 1959년 10월에 미국 원조 자금을 이용하여 충북 충주에 요소 비료를 생산하기 위해 설립된 공장이다. 1950년대에 최대의 수입품이었던 비료는 자립 경제 기반을 구축하기 위해서는 국내 생산 공장을 건설하여 비료 수입을 대체할 필요가 있었다. 이에 비료 공장 건설 논의가 정부 내에서 활발하게 논의되었고, 이것은 원조가 본격적으로 도입되는 1954년에 실현되었다. 한국 정부는 비료 공장 건설사로 결정된 MHC와 1955년에 비료 공장 건설 계약을 체결했고, 비료 공장은 1959년 10월에 준공되었다.
충주비료공장 (忠州肥料工場)
충주비료공장은 1959년 10월에 미국 원조 자금을 이용하여 충북 충주에 요소 비료를 생산하기 위해 설립된 공장이다. 1950년대에 최대의 수입품이었던 비료는 자립 경제 기반을 구축하기 위해서는 국내 생산 공장을 건설하여 비료 수입을 대체할 필요가 있었다. 이에 비료 공장 건설 논의가 정부 내에서 활발하게 논의되었고, 이것은 원조가 본격적으로 도입되는 1954년에 실현되었다. 한국 정부는 비료 공장 건설사로 결정된 MHC와 1955년에 비료 공장 건설 계약을 체결했고, 비료 공장은 1959년 10월에 준공되었다.
경제조정관실은 1953년 대한원조사업을 조정하기 위해 유엔사령부 산하에 설치한 원조기구이다. 한국전쟁 이후 한국에는 미국의 원조 외에도 유엔한국재건단과 같이 유엔을 통한 원조도 있었고, 미국의 원조와 유엔 원조를 함께 조정하고 집행할 수 있는 별도의 기관이 필요하였기 때문에 효과적인 원조 운영을 위하여 경제조정관실이 설치되었다. 경제조정관실은 1953년 설치되어 1959년 유솜(USOM)으로 대체될 때까지 한국에서의 미국 경제원조정책의 현지 집행부서로 활동하였다.
경제조정관실 (經濟調整官室)
경제조정관실은 1953년 대한원조사업을 조정하기 위해 유엔사령부 산하에 설치한 원조기구이다. 한국전쟁 이후 한국에는 미국의 원조 외에도 유엔한국재건단과 같이 유엔을 통한 원조도 있었고, 미국의 원조와 유엔 원조를 함께 조정하고 집행할 수 있는 별도의 기관이 필요하였기 때문에 효과적인 원조 운영을 위하여 경제조정관실이 설치되었다. 경제조정관실은 1953년 설치되어 1959년 유솜(USOM)으로 대체될 때까지 한국에서의 미국 경제원조정책의 현지 집행부서로 활동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