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조정관실 ()

현대사
제도
1953년, 대한원조사업을 조정하기 위해 유엔사령부 산하에 설치한 원조기구.
제도/법령·제도
제정 시기
1953년
폐지 시기
1959년
주관 부서
유엔군사령부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내용 요약

경제조정관실은 1953년 대한원조사업을 조정하기 위해 유엔사령부 산하에 설치한 원조기구이다. 한국전쟁 이후 한국에는 미국의 원조 외에도 유엔한국재건단과 같이 유엔을 통한 원조도 있었고, 미국의 원조와 유엔 원조를 함께 조정하고 집행할 수 있는 별도의 기관이 필요하였기 때문에 효과적인 원조 운영을 위하여 경제조정관실이 설치되었다. 경제조정관실은 1953년 설치되어 1959년 유솜(USOM)으로 대체될 때까지 한국에서의 미국 경제원조정책의 현지 집행부서로 활동하였다.

정의
1953년, 대한원조사업을 조정하기 위해 유엔사령부 산하에 설치한 원조기구.
내용

설립 배경 및 성격

1953년 8월 1일 미국의 대외원조기구가 대외활동본부[FOA:Foreign Operation Administration]로 개편되고, 이전의 미국 육군부 예산 중에서 2억 달러를 대한 원조자금에 충당함으로써 본격적인 대외사업처 원조가 한국에 도입되기 시작하였다.

한국전쟁 이후 대한민국에 제공되는 주1는 미국의 대외원조기구를 통한 주2 뿐 아니라 유엔 계통의 유엔한국재건단[UNKRA], 한국의 민간구호계획을 담당하는 미 육군부의 한국민사처[KCAC] 등 복잡한 경로를 거치는 것이었다. 이러한 복잡한 구조 하에서 미국무부 외교라인을 통해 주미대사가 일괄적으로 관할하는 유솜[USOM : United States Operations Mission]의 체제는 한국의 경우 적절하지 못했다. 이런 이유로 한국에는 경제조정관실이라는 별도의 기관이 필요하게 되었고, 이를 통해 미국의 원조와 유엔 원조를 함께 조정하고 집행할 수 있도록 하였다.
더구나 전쟁 상황 하에서 경제원조는 주3와 밀접한 관련을 갖지 않을 수 없었고 휴전 이후 도입된 경제원조의 경우도 일정한 군사력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경제적 보완차원의 성격이 강했다. 한국의 경제조정관실은 주4 총사령관의 관할 하에 배치되었고, 이는 한국의 원조문제에서 군부의 영향력을 높이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1959년 국무부 관할 하의 유솜[USOM]으로 변경될 때까지 이 관계는 계속 유지되었다.

조직구성과 운영

1953년 8월 미국의 대외경제원조 담당기관으로 대외활동본부[FOA]가 설치되고, 휴전 이후 한국 경제 강화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제출된 타스카 보고서의 권고에 따라 한국 현지의 원조집행기관으로 유엔군 사령관 밑에 경제조정관실이 설치되었다. 미국 대통령 교서에 의하면 경제조정관은 경제원조에 관한 종합계획을 현지에서 수립, 감독하며 미국 정부와 유엔한국재건단[UNKRA]의 경제원조 활동과 군사 활동을 조정할 임무를 갖고 있었다.

경제조정관실을 운영하는 책임자인 경제조정관은 합동경제위원회유엔군 사령부측 대표이자 동시에 유엔군 사령부 경제자문관으로도 기능하였다. 초대 경제조정관으로는 대외사업처 차장을 지낸 타일러 우드(Tyler Wood)가 임명되었고, 2대 경제조정관으로는 1956년 윌리엄 원[William E.Warne]이 부임하였다. 원은 1959년 봄까지 경제조정관의 직책을 수행하였고, 그의 후임으로는 국무부 극동국 관리로서 대한원조 문제에 관여했던 모이어[Raymond T. Moyer]가 임명되었다.

경제조정관실은 1953년 설치되어 1959년 유솜으로 대체되기까지 한국에서의 미국 경제원조정책의 현지 집행부서로 활동하였다. 경제조정관실은 원조정책 수행을 위해 각각의 업무의 성격에 따라 실행부서를 설치하였다. 1954년 6월 당시 설치된 실행부서들은 경제조정관, 기획국[Program Office], 재경 정책국[Office of Economic and Fiscal Policy], 조정국[Office of Management], 기술운영국[Office of Technical Operation] 등이었다. 이후 각 실행부서들은 한국 상황의 변화에 따라 필요한 부서들을 증설하는 것으로 확대 개편되었다.

1955년 7월 미국의 원조기관이 국제협조처[ICA]로 변경되면서 국방부가 담당하는 군사원조를 제외한 모든 비군사원조를 ICA에서 담당하게 되었다. 미국 대외원조기구의 개편으로 인하여 경제조정관은 ICA의 주한대표가 되었다. 이에 따라 주한경제조정관실도 조직 개편이 이루어졌다. 한국 정부 행정 능력의 효율성을 제고하기 위해 기술훈련을 담당할 기술운영실이 확대되었고, 농업분야 기술을 담당하는 농업국, 공공행정 및 보건 교육 등 정부 서비스 분야를 담당하는 정부 서비스국, 전력, 운송, 통신, 산업 등 재건분야를 담당하는 재건기술국 등이 신설되었다. 이는 미국이 1950년대 중반 이후 원조의 전반적인 삭감을 고려하는 가운데 원조의 효율적인 운영을 위한 한국 전문 인력의 양성 및 행정인력의 중요성이 강조된 데서 비롯된 것이며, 원조의 삭감을 기술적인 지원과 해외 민간투자의 확대로 대체하려는 미국의 대외원조에 대한 인식의 반영이었다. 경제조정관실의 확대 개편과 함께 경제조정관실과 한국 정부와의 경제조정기관인 합동경제위원회의 운영도 활성화되었다.

1959년 경제조정관실은 유엔군사령부로부터 독립하여 유솜[USOM]이라는 미국의 독자적인 원조관리기구로 개편되었다. 이는 1958년 6월로 유엔한국재건단[UNKRA] 원조가 청산단계로 접어들면서 유엔 원조와의 조정을 위한 기구로서 경제조정관실의 역할이 상실되었기 때문이다.

참고문헌

단행본

이현진, 『미국의 대한경제원조정책 1948~1960』(혜안, 2009)

논문

한봉석, 「1950년대 미국의 대한기술원조」(성균관대학교 박사 학위 논문, 2017)
주석
주1

물품이나 돈 따위로 도와줌. 우리말샘

주2

선진국이 약소국이나 개발 도상국에 대하여 자본이나 기술을 무상 또는 유상으로 주는 일. 우리말샘

주3

한 나라의 군사력을 강하게 하기 위하여 물질적으로나 재정적으로 도와주는 일. 우리말샘

주4

국제 연합 회원국들의 군 병력으로 편성한 군대. 안전 보장 이사회의 요구에 따라 국가 간의 침략을 방지하고 진압할 목적으로 조직했다. 1950년 6·25 전쟁 때 처음으로 출병하였다. 우리말샘

집필자
이현진(국사편찬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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