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1950년 12월 국제연합이 한국의 부흥과 재건을 돕기 위해 설립한 기구.
개설
연원 및 변천
기능과 역할
국제연합한국재건단이 본래의 목적하에서 본격적인 원조활동을 시작한 것은 1953년 휴전 이후였다. 국제연합한국재건단은 각국으로부터의 자금 갹출이 어느 정도 실현되고 전세가 완화된 1953년에 7,000만 달러의 기금으로 부흥사업에 착수하였다. 1958년 7월 1일 공식적으로 활동을 종료할 때까지 국제연합한국재건단은 총 1 22,084,000달러의 계획된 물자를 한국에 지원하였다. 국제연합한국재건단은 식량을 비롯한 민수물자를 들여와서 민생안정을 꾀하는 데 주력하였고, 파괴된 산업 · 교통 · 통신시설의 복구와 주택 · 의료 · 교육 시설 재건에 힘썼다. 비록 활동기간 동안에 책임과 관할권의 소재, 관료주의, 파벌주의 등으로 인해 유엔군사령부 및 미 경제원조처와 마찰을 빚기도 했지만, 국제연합한국재건단의 원조 활동은 인천판유리공장, 문경시멘트공장, 국립의료원의 설립과 같이 한국의 주요 산업시설과 의료시설들을 발전시키는 기여하였다. 국제연합한국재건단이 존속한 8연 기간 동안 이 기구를 이끈 사람은 전쟁 기간 동안 미 제1군단장과 제9군단장을 역임하고 퇴역한 쿨터(John Coulter) 장군이었다.
참고문헌
- 『한미관계 20년사(1945∼1965년)·해방에서 자립까지』(도널드 스턴 맥도널드 저, 한국역사연구회 1950년대반 역, 한울, 2001)
- 「제1공화국기 미국의 대한경제원조정책 연구」(이현진, 이화여대 대학원 박사학위논문,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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