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과학연구소는 ‘자주국방의 초석’이라는 기치아래 1970년 8월 6일 창설된 국방과학기술 연구기관이다. 국방에 필요한 무기, 장비 및 물자와 관련한 기술조사, 연구, 개발 및 시험을 담당하여 왔으며 무기체계 획득과 관련된 기술검토 및 시험평가 등 기술지원을 수행하여 국방 및 국가 과학기술 발전을 선도하고 있다.
1970년 12월 31일 공포된 「국방과학연구소 설치법」에 의하면, 연구소의 설립 목적은 “국방에 필요한 병기·장비 및 물자에 관한 기술적 조사·연구·개발 및 시험과 이에 관련되는 과학기술의 조사연구 및 시험 등을 담당하여 국방력의 강화와 자주국방의 완수에 기여”하는 것이었다.
국방과학연구소는 과학기술로써 자주국방의 사명을 다하고자 1970년 8월 6일 창설되었다. 우리나라는 1960년대 중반 이후 북한의 군사적 위협 증대와 미국의 대아시아정책의 변화로 자주국방정책을 추구하게 되었다. 1970년 초 박정희 대통령은 국방부 연두순시에서 방위산업을 전담할 부서설치를 지시하였으며, 이를 계기로 국방과학연구소가 창설되었다. 창설 당시 연구소는 정부기관 성격을 가지되 예산회계업무상 불필요한 제약을 배제하고자 특수법인체로 창설되었다. 연구소는 1971년 말 방위산업을 촉진하고 예비군 무장화를 조기에 달성하기 위한 긴급병기 개발(번개사업) 착수를 기점으로 소화기, 발칸포, 로켓, 탄약 등 기본적인 무기체계와 장비, 물자 등의 개발능력과 기술을 확보하였다. 1972년 11월 서울 홍릉에 새로운 신축 청사를 마련하였으며, 1974년 2월에는 유도탄 개발을 목적으로 하는 항공공업 육성계획에 따라 대전기계창을, 1976년 5월에는 해군 장비개발을 위한 진행기계창을 설치하였다. 연구소는 1980년 9월 2일부로 종전의 지역개념 조직체계를 무기체계별 임무개념으로 전환하여 5개 사업단, 즉 지상병기(서울), 해상병기(진해), 항공기 및 유도무기(대전), 통신전자(대전), 화공기재(대전)사업단으로 조정하고, 시험평가단(안흥)과 더불어 6개의 단으로 편성하였다. 그리고 1983년 1월 연구소 본부를 서울 홍릉에서 대전으로 이동하였다. 이후 1995년 5월 창원 기동시험장, 진해 해상시험장을 건설하고 1998년 민군겸용기술센터를 설립했으며, 2008년 9월 해미 항공시험장을 건설·운용 중이다. 이러한 변화 과정에서 부설 기관이었던 국방관리연구소(현 국방연구원)가 1987년 3월에, 국방품질관리소(현 국방기술품질원)가 2006년 2월 에 각각 국방과학연구소에서 분리되었다.
무기체계 및 관련 기술의 연구개발 및 시험평가를 수행하며, 군용물자에 관한 연구위탁과 연구보조지원 및 민·군 겸용 기술개발사업과 민간장비에 대한 시험·평가 등의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연구소의 조직은 소장실, 부소장실, 감사실을 비롯해 소장 직속 부서로 정책기획부, 연구계획부, 연구지원본부, 민군기술협력지원센터 등이 있으며, 지상무기·수중해양무기·항공유도무기·통신·기술 분야의 연구개발과 평가를 위해 9개의 본부와 1개의 공용기술단이 있다.
1970년대 국내 산업기반이 전무한 시절에 자주국방의 실현을 위해 소총, 화포, 지대지미사일 등을 개발하여 국내 방위산업과 국가기술발전에 크게 이바지 하였으며, 1980년대에는 유도무기와 전차, 장갑차 및 고성능 잠수정 등을 개발하여 육·해·공군의 전력증강을 위한 기틀을 마련하였다. 1990년대에는 신형 155미리 자주포, 중어뢰, 기본훈련기(KT-1) 등 고도정밀무기를 개발하였으며, 2000년대에는 항공기 및 함정 탑재 전자전 장비와 함대함유도탄을 비롯한 세계수준의 복합무기체계 독자개발 능력을 갖추는 등 국방 및 국가 과학기술 발전을 선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