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덕우(南悳祐)는 1924년 경기도 광주에서 출생하였다. 1946년 국민대학관 정경학과(야간)에 입학하였는데, 1948년 야간이던 국민대학관이 주간 정규대학인 국민대학교로 승격되고, 정경학부는 정치학과와 경제학과로 분리되면서 1950년 국민대학교 정치학과 제1회 졸업생이 되었다. 1952년 11월부터 1954년 3월까지 한국은행 행원으로 자금과 업무를 담당하였다.
1956년 서울대학교 대학원 경제학과 석사과정을 졸업하고, 1957년 미국의 스미스-문트(Smith-Mundt) 프로그램 장학생으로 선발되어 미국 오클라호마대학교 대학원 석사과정에 진학하였다. 1960년 8월 경제학 석사와 박사과정을 마치고 1961년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54년부터 1964년까지 국민대학교 교수를 지냈으며, 1964년 9월에는 이승윤 교수의 주선으로 1969년까지 서강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로 재직하였다. 1965년 『가격론』을 펴내고 경제발전론, 경제학설사 등을 강의하였다. 또한, 국무총리 소속 기획조정실 주관으로 편성된 평가교수단에 소속되어 제2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에 대한 평가 업무를 수행하였다.
1967년 스탠퍼드대학교 초청 교수로 미국을 다녀온 후, 1968년 8월 경제과학심의회의 상임위원으로 위촉되어 활동하다가 1969년 제24대 재무부 장관에 임명되었다. 재무부 장관 시절, 상업은행의 민영화를 추진하였으며, 1972년 기업 부담 경감을 위한 사채 동결 방안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8 · 3긴급금융조치(八三緊急金融措置)가 시행되었다.
1974년 9월부터 1978년 12월까지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을 지냈으며, 1979년에는 대통령 경제 담당 특별보좌관을 맡았다. 1969년부터 10여 년간 경제 관료로서 경제정책과 재무행정을 주도하였으며, 개발경제의 주역으로 중동 진출, 중화학공업 육성에 기여하였다.
1980년 초 한국개발연구원 객원연구원으로 지내다가 제14대 국무총리로 정부에 복귀하였다가 1982년 사임하였고, 1982년 1월 16일 국정자문회의 위원으로 위촉되었다.
공직 생활을 마감한 후 1983년 한국무역협회 회장으로 취임하여 한국종합무역센터 건립을 추진하였으며, 1991년에는 한국무역협회 산하단체인 산학협동재단 이사장직으로 자리를 옮겼다. 2007년 2월 이사장 임기가 만료될 때까지 한국경제 문제와 동북아 지역 경제 동향을 주제로 한 강연과 신문 · 잡지에 많은 기고를 하고, 발표한 논문들을 모아 책을 내기도 하였다.
이후 한미경제협의회 회장, 태평양경제협력위원회(PECC) 상임위원, 한국태평양경제협력위원 회(KOPEC) 회장, 동아시아경제연구원(API) 회장, 동북아경제포럼 한국위원회 위원장, 동서문화센터(EWC) 이사, 세계무역센터협회(WTCA) 이사, 한일협력위원회 회장, IBC 포럼 이사장, 한국선진화포럼 이사장 등을 역임하였다.
주요 저서로는 『경제학사』(1955), 『신경제학사』(공저, 1962), 『통화량 결정요인과 금융정책』(공저, 1966), 『가격론』(1970), 『태평양 공동체와 무역정책』(1980), 『국제화시대의 한국경제』(1997), Korea’s Economic Growth in a changing World(1997), 『동북아로 눈을 돌리자』(2002), 『한국, 과거를 딛고 미래를 보자』(2007) 등이 있다.
1978년 청조근정훈장을 받았으며, 2013년 국민훈장 무궁화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