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협조처는 1948년 12월 한미경제협정 체결을 통해 미국의 한국 원조에 대한 계획과 조정을 담당한 대외 원조 기구이다. 원래 1948년도 외국 원조법에 의거하여 유럽경제부흥을 위해 설치한 미국의 대외원조기구였는데, 1948년 12월 10일에 ‘대한민국과 미합중국간의 원조협정’을 체결한 후, 주한 경제협조처 사절단을 개설하고 1949년 1월 1일부터 원조사무를 시작하였다. 경제협조처 원조는 한국 경제 개발의 촉진을 위한 기술 원조와 원료 물자, 비료 및 부흥 계획에 필요한 물자를 제공하는데 중점을 둔 것이었다.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됨에 따라 한국과 미국은 1948년 12월 10일에 ‘대한민국과 미합중국간의 원조협정’을 체결하였고, 1949년 1월 트루먼 미국 대통령이 대한원조의 책임을 육군부에서 경제협조처로 이관하면서 한국은 경제협조처[Economic Cooperation Administration, 이하 ECA] 원조의 적용을 받게 되었다. ECA 대한원조는 미국의 봉쇄정책의 구상 하에서 주한미군 철수에 대한 대안으로 고려되었다.
대한 ECA 원조 계획은 이전의 주1적인 구호용 원조의 성격을 벗어나 비료 · 석탄 · 전력 개발 등 경제재건 계획을 포함하는 경제 부흥 원조로서의 성격을 분명히 하였다. 그러나 실제의 도입 실적을 살펴보면, 예정된 투자 계획이 크게 축소되고 원조 규모가 이에 따라 삭감되었다. 또한 구성 내용에 있어서도 시설재의 도입보다는 비료, 원면, 식량 등 소비재 물자가 압도적이어서 당초의 계획과는 다른 결과를 나타내었다.
한국에 대한 투자 계획이 축소 · 조정된 것은 중국 문제에 대한 미 행정부와 국회간의 갈등으로 인하여 대한 원조 계획에 대한 논의가 지연되고 미국 내 경제 사정에 의하여 불규칙하게 운영되었다는 사실에서 우선 기인하는 것이지만, 당시 한국의 경제적 조건도 주요한 영향을 미쳤다.
한국 정부의 재정 주2로 인한 계속되는 통화 주3은, 원조의 운영이 경제 부흥보다는 우선적으로 통화 안정과 재정 안정 정책을 통한 경제 안정 및 사회 안정의 달성이라는 목표 하에 추진되도록 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에서 미국은 원조의 판매 대금인 대충자금의 적립과 운용을 통하여 한국의 재정 금융 부문을 관리 · 장악함으로써 실질적으로는 정책 결정에서부터 시행에 이르기까지 한국 경제 정책 전반에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원조를 수단으로 하는 미국의 한국정부 경제정책에 대한 개입은 1950년 초 한미경제안정위원회를 설치하고 경제 안정 15원칙을 수립 · 집행하는 과정에서 계속 강화된 형태로 나타났다.
ECA 원조는 적극적인 경제 원조로서의 성격을 지니고 있는 것이었지만 그 운영과정에서 통화 팽창을 억제하기 위한 정책 수단으로 활용되어졌고, 대한민국 정부의 원조 운영 정책은 원조 물자의 불규칙한 도입, 원조 물자 운영체계의 결함, 종합적인 생산 정책의 부재 등으로 일정한 성과를 거둘 수 없었다.
그러나 한미관계에서 볼 때, ECA 원조는 원조 물자 운영 기구의 마련, 대충자금의 설치 등 한미간의 원조 운용 방식을 제도화하는 과정이었으며, 이것은 이후 원조 운용에 있어서 기준이 되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