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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민은 일제강점기 「유란부」, 「독서락」, 「누실명」 등의 작품을 낸 서예가이다. 1912년 정읍 태인에서 태어나 9세부터 부친의 권유로 김돈희의 가르침을 받으면서 서예를 익혔다. 11세부터 전남 영광의 불갑사의 「불갑사」와 백양사의 「우화루」 등의 현판 글씨를 쓰면서 소녀서예가로 이름을 날렸다. 12세에 조선미술전람회에 입선하고 수차례 특선을 하면서 천재 여류서예가로 주목을 받았다. 불심이 깊어 백양사, 금산사, 내장사 등 사찰 편액에 글씨를 남겼다. 김진민은 행서·해서·예서·초서 등 다양한 서체를 구사하였으며, 강건하고 웅대한 서풍을 구사하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김진민 (金瑱珉)
김진민은 일제강점기 「유란부」, 「독서락」, 「누실명」 등의 작품을 낸 서예가이다. 1912년 정읍 태인에서 태어나 9세부터 부친의 권유로 김돈희의 가르침을 받으면서 서예를 익혔다. 11세부터 전남 영광의 불갑사의 「불갑사」와 백양사의 「우화루」 등의 현판 글씨를 쓰면서 소녀서예가로 이름을 날렸다. 12세에 조선미술전람회에 입선하고 수차례 특선을 하면서 천재 여류서예가로 주목을 받았다. 불심이 깊어 백양사, 금산사, 내장사 등 사찰 편액에 글씨를 남겼다. 김진민은 행서·해서·예서·초서 등 다양한 서체를 구사하였으며, 강건하고 웅대한 서풍을 구사하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서울 봉은사 판전 신중도는 서울특별시 강남구 봉은사 판전에 봉안되어 있는 19세기 신중도다. 2007년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비단 바탕에 채색으로 세로 237㎝, 가로 224.4㎝이다. 경판을 보관하기 위해 건립된 판전에 봉안된 불화이다. 정사각형에 가까운 화면에 39명의 인물을 4단으로 배치하였다. 첫 번째 단 중앙에 흰소를 타고 있는 대자재천과 세 번째 단에는 예적금강이 주요 존상으로 자리하고 있다. 18세기 중반 이후 불교의식이 변화함에 따라 신중도를 봉안하고 주로 일상 의식인 예불을 행하는데, 이 불화는 당시 변화된 불교의식을 반영하고 있다.
서울 봉은사 판전 신중도 (서울 奉恩寺 板殿 神衆圖)
서울 봉은사 판전 신중도는 서울특별시 강남구 봉은사 판전에 봉안되어 있는 19세기 신중도다. 2007년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비단 바탕에 채색으로 세로 237㎝, 가로 224.4㎝이다. 경판을 보관하기 위해 건립된 판전에 봉안된 불화이다. 정사각형에 가까운 화면에 39명의 인물을 4단으로 배치하였다. 첫 번째 단 중앙에 흰소를 타고 있는 대자재천과 세 번째 단에는 예적금강이 주요 존상으로 자리하고 있다. 18세기 중반 이후 불교의식이 변화함에 따라 신중도를 봉안하고 주로 일상 의식인 예불을 행하는데, 이 불화는 당시 변화된 불교의식을 반영하고 있다.
휘는 누군가의 이름을 직접 부르거나 글로 쓰지 않는 행위 또는 죽은 사람의 이름을 지칭하는 용어이다. 유교문화권에서는 임금과 같이 신분이 존귀한 사람, 조상이나 부모와 같은 친한 사람, 인격이나 학문이 뛰어난 어진 사람의 이름을 휘했고, 죽은 사람의 이름도 졸곡이 지난 다음부터는 휘했다. 한편, 누군가가 죽은 뒤에 그가 생전에 사용했던 이름을 ‘휘’라고 지칭한다.
휘 (諱)
휘는 누군가의 이름을 직접 부르거나 글로 쓰지 않는 행위 또는 죽은 사람의 이름을 지칭하는 용어이다. 유교문화권에서는 임금과 같이 신분이 존귀한 사람, 조상이나 부모와 같은 친한 사람, 인격이나 학문이 뛰어난 어진 사람의 이름을 휘했고, 죽은 사람의 이름도 졸곡이 지난 다음부터는 휘했다. 한편, 누군가가 죽은 뒤에 그가 생전에 사용했던 이름을 ‘휘’라고 지칭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