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러일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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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추원은 1894년에 설립되어 일제강점기까지 존속하였으며, 한일합병 전에는 초기 의회와 같은 역할을 하였고 일제 강점기에는 조선총독의 자문 역할을 한 기관이다. 1894년, 갑오개혁기에 정치개혁과 관제개혁에서 소외된 사람들을 관리하기 위하여 설립되었다. 대한제국기에는 독립협회, 만만공동회의 활약에 힘입어 국정에 민의를 반영하는 의회적 성격을 띠었으며, 한일병합 후에는 조선총독의 자문기관으로 변화하였다. 이 외에 구관습을 조사하는 업무를 하였다. 문화정치기에 민심수습책의 일환으로 중추원에 지역참의를 설치하였다.
중추원 (中樞院)
중추원은 1894년에 설립되어 일제강점기까지 존속하였으며, 한일합병 전에는 초기 의회와 같은 역할을 하였고 일제 강점기에는 조선총독의 자문 역할을 한 기관이다. 1894년, 갑오개혁기에 정치개혁과 관제개혁에서 소외된 사람들을 관리하기 위하여 설립되었다. 대한제국기에는 독립협회, 만만공동회의 활약에 힘입어 국정에 민의를 반영하는 의회적 성격을 띠었으며, 한일병합 후에는 조선총독의 자문기관으로 변화하였다. 이 외에 구관습을 조사하는 업무를 하였다. 문화정치기에 민심수습책의 일환으로 중추원에 지역참의를 설치하였다.
포츠머스 조약은 1905년 9월에 러일전쟁을 마무리하기 위해 미국 포츠머스에서 일본과 러시아 간에 체결된 강화조약이다. 러일전쟁이 장기화되면서 막대한 재정 부담을 안게 된 일본과 계속 패전하고 있는 러시아가 미국의 중재로 15차례 회담 끝에 체결하였다. 한국에 대한 일본의 자유처분권을 확보하고, 사할린의 남쪽 부분을 할양받는 등 일본의 승리를 확인하는 5개 사항에 합의하였다. 미국과 가쓰라-테프트 비밀협정을 체결한 일본은 영국과 제2차 영일동맹을 체결하는 등 대한제국에 대한 독점적 지배를 안정적으로 확약받게 되었다.
포츠머스 조약 (Portsmouth 條約)
포츠머스 조약은 1905년 9월에 러일전쟁을 마무리하기 위해 미국 포츠머스에서 일본과 러시아 간에 체결된 강화조약이다. 러일전쟁이 장기화되면서 막대한 재정 부담을 안게 된 일본과 계속 패전하고 있는 러시아가 미국의 중재로 15차례 회담 끝에 체결하였다. 한국에 대한 일본의 자유처분권을 확보하고, 사할린의 남쪽 부분을 할양받는 등 일본의 승리를 확인하는 5개 사항에 합의하였다. 미국과 가쓰라-테프트 비밀협정을 체결한 일본은 영국과 제2차 영일동맹을 체결하는 등 대한제국에 대한 독점적 지배를 안정적으로 확약받게 되었다.
대한제국 고종 「황제어새」는 대한제국 고종황제가 비밀 외교를 위해 사용한 국새이다. 2009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고종은 당시 외교문서에 쓰는 공식 국새 대신 새로운 국새 「황제어새」를 제작해 사용하였다. 「황제어새」가 찍힌 문서는 1900년부터 1909년까지 약 10년에 걸쳐 모두 18건이 발견되었다. 대부분 프랑스, 러시아, 독일의 군주에게 대한제국에 대한 지지를 요청한 문서들이며 그 외에 헤이그밀사 파견 문서 등이 있다. 이 국새가 찍힌 여러 문서를 통해 당시 일본의 한반도 침탈 실상과 이에 대한 고종의 대응 방식을 확인할 수 있다.
대한제국 고종 「황제어새」 (大韓帝國 高宗 「皇帝御璽」)
대한제국 고종 「황제어새」는 대한제국 고종황제가 비밀 외교를 위해 사용한 국새이다. 2009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고종은 당시 외교문서에 쓰는 공식 국새 대신 새로운 국새 「황제어새」를 제작해 사용하였다. 「황제어새」가 찍힌 문서는 1900년부터 1909년까지 약 10년에 걸쳐 모두 18건이 발견되었다. 대부분 프랑스, 러시아, 독일의 군주에게 대한제국에 대한 지지를 요청한 문서들이며 그 외에 헤이그밀사 파견 문서 등이 있다. 이 국새가 찍힌 여러 문서를 통해 당시 일본의 한반도 침탈 실상과 이에 대한 고종의 대응 방식을 확인할 수 있다.
소나무과 솔송나무속에 속하는 상록 침엽 교목.
솔송나무
소나무과 솔송나무속에 속하는 상록 침엽 교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