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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산김씨 예안파 종손가에 소장된 유학서. 종가유물.
광산김씨 예안파 종가 전적 (光山金氏 禮安派 宗家 典籍)
광산김씨 예안파 종손가에 소장된 유학서. 종가유물.
김시습은 조선전기 『매월당집』·『금오신화』·『만복사저포기』 등을 저술한 학자이자 문인이다. 1435년(세종 17)에 태어나 1493년(성종 24)에 사망했다. 5세 신동이라 불릴 정도로 어릴 때부터 글재주가 뛰어났다. 21세 때 수양대군의 왕위찬탈 소식을 듣고 3일간 통곡하다 보던 책을 불사른 뒤 승려가 되었다. 생육신으로서 단종에 대한 절개를 끝까지 지키며 유랑인의 삶을 살다 충남 부여의 무량사에서 생을 마쳤다. 그는 근본사상은 유교에 두고 불교적 사색을 병행했으며, 선가의 교리까지 포괄하려고 시도하는 등 다채로운 면모를 보였다.
김시습 (金時習)
김시습은 조선전기 『매월당집』·『금오신화』·『만복사저포기』 등을 저술한 학자이자 문인이다. 1435년(세종 17)에 태어나 1493년(성종 24)에 사망했다. 5세 신동이라 불릴 정도로 어릴 때부터 글재주가 뛰어났다. 21세 때 수양대군의 왕위찬탈 소식을 듣고 3일간 통곡하다 보던 책을 불사른 뒤 승려가 되었다. 생육신으로서 단종에 대한 절개를 끝까지 지키며 유랑인의 삶을 살다 충남 부여의 무량사에서 생을 마쳤다. 그는 근본사상은 유교에 두고 불교적 사색을 병행했으며, 선가의 교리까지 포괄하려고 시도하는 등 다채로운 면모를 보였다.
김시습 초상은 조선 전기의 승려이자 문인이었던 김시습을 그린 영정이다. 세로 72㎝, 가로 48.5㎝로 충청남도 부여군 만수리 무량사에 소장되어 있다. 무색 도포를 입고 평량자 형태의 흑립을 쓴 채 반우향의 자세로 공수한 매우 독특한 도상의 반신상이다. 얼굴 전체는 약간 붉은 기가 도는 살색으로 가볍게 담채하였다. 직선적인 옷주름은 초상 전체의 고아하고 세련된 느낌을 준다. 도상과 화법상의 특징으로 볼 때 숙종대를 전후하여 제작된 이모본으로 추정된다. 김시습 초상은 가채가 전혀 없는 조선 전기 평상복 초상화 중 걸작이라는 점에서 역사적인 의미가 있다.
김시습 초상 (金時習 肖像)
김시습 초상은 조선 전기의 승려이자 문인이었던 김시습을 그린 영정이다. 세로 72㎝, 가로 48.5㎝로 충청남도 부여군 만수리 무량사에 소장되어 있다. 무색 도포를 입고 평량자 형태의 흑립을 쓴 채 반우향의 자세로 공수한 매우 독특한 도상의 반신상이다. 얼굴 전체는 약간 붉은 기가 도는 살색으로 가볍게 담채하였다. 직선적인 옷주름은 초상 전체의 고아하고 세련된 느낌을 준다. 도상과 화법상의 특징으로 볼 때 숙종대를 전후하여 제작된 이모본으로 추정된다. 김시습 초상은 가채가 전혀 없는 조선 전기 평상복 초상화 중 걸작이라는 점에서 역사적인 의미가 있다.
「석씨전심」은 조선 전기, 김시습이 유교의 성리설과 불교의 심성론을 대조하여 지은 글이다. 생육신(生六臣)으로 유명한 유학자로서 출가했던 저자가 유교와 불교의 심성 인식을 정리한 내용으로 본성과 이치, 깨달음에 대한 통찰력을 볼 수 있다.
석씨전심 (釋氏傳心)
「석씨전심」은 조선 전기, 김시습이 유교의 성리설과 불교의 심성론을 대조하여 지은 글이다. 생육신(生六臣)으로 유명한 유학자로서 출가했던 저자가 유교와 불교의 심성 인식을 정리한 내용으로 본성과 이치, 깨달음에 대한 통찰력을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