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시습 초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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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습 초상
김시습 초상
회화
유물
문화재
조선시대 승려이자 문인이었던 김시습의 초상.
이칭
이칭
김시습영정, 매월당초상
국가지정문화재
지정 명칭
김시습 초상(金時習 肖像)
지정기관
문화재청
종목
보물(2006년 12월 29일 지정)
소재지
서울특별시 종로구 우정국로 55(견지동) 불교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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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시대 승려이자 문인이었던 김시습의 초상.
개설

2006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비단 바탕에 채색. 세로 72㎝, 가로 48.5㎝. 충청남도 부여군 외산면 만수리무량사(無量寺)에 소장되어 있다. 조선 전기의 승려이자 문인이었던 김시습(金時習)을 그린 영정이다.

제작 연대

김시습 초상은 무색 도포를 입고 평량자(平凉子) 형태의 흑립(黑笠)을 쓴 채 반우향의 자세로 공수(拱手: 두 손을 마주잡음)한 매우 독특한 도상의 반신상이다. 이 초상은 지금까지 그의 생존 시에 그려진 조선 전기의 것으로 알려져 왔다. 그러나 현재 기준작으로 삼을 만한 조선 전기의 확실한 초상화가 없기 때문에 단정적으로 말할 수는 없다. 도상과 화법상의 몇몇 특징으로 볼 때 조선 중후기의 이모본일 가능성이 많다. 즉 도포의 팔과 소매 부분의 옷주름이 15세기의 공신도상(功臣圖像)과 크게 다르다. 오히려 17세기 초반의 공신도상 계열에서 특징적으로 나타나는 옷주름 형태나 필법과 가장 흡사하다. 또한 얼굴에 분홍색을 배채(背彩)하고 도포에 흰색을 배채한 것은 17세기의 공신도상 계열에서도 보기 어렵고 18세기의 초상화들에서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특징이다.

조선 초중기의 초상화가 전반적으로 강하고 호무(豪武)한 분위기를 풍긴다. 이에 비하여 김시습의 영정은 전체적으로 단순하고 우아하며 세련된 느낌이 들어서 17세기 중후반경의 허목(許穆), 송시열(宋時烈) 및 윤증(尹拯) 같은 산림학자들의 초상과 더욱 유사하다. 김시습이 사대부 사이에서 높은 청절로 크게 존경받고 그의 초상화가 자주 언급되면서 여러 차례 이모(移模)되었던 것은 산림풍의 성리학자들이 활발히 활동하는 17세기 중·후반경의 일이었다.

『매월당집(梅月堂集)』에는 김시습이 생전에 노소(老少) 두 상을 그렸다고 전한다. 그러나 이 초상들이 자화상이라고 단정하기 어렵다. 1618년 간행된 『매월당시사유록(梅月堂詩四遊錄)』에는 김시습 초상의 판화본이 전한다. 발문에 의하면 김시습의 자화상이 무량사에 있었는데 이영윤(李英胤)이 이를 모사해서 보내주어 실었다는 내용이 수록되어 있다. 하지만 이 무량사본은 초상화를 전문적으로 그렸던 화원 화가만이 구사할 수 있는 화법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자화상으로 보기 어렵다.

이상에서 언급한 여러 가지 사실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현존하는 작품은 숙종대를 전후하여 제작된 이모본으로 추정된다. 현전하는 무량사본은 송시열이 보았던 수염을 기르고 승려의 옷을 입은 승려상이 아니다. 일반 사대부상처럼 흑립과 귀 사이에 위로 쓸어 올린 머리카락을 분명하게 묘사하고 있다. 손도 공수 자세를 취함으로써 완전히 사대부의 모습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도 바로 이 초상이 사대부들의 시각에서 다시 제작되었음을 보여 주는 예증이라고 생각된다.

내용

평량자 형태의 흑립은 현재 고려 말 조선 초 인물들의 영정으로 전해 오는 초상화들에서 가장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모제(帽制)이다. 기본 형태를 가는 먹선으로 그린 다음, 모정 부분은 짙은 농묵(濃墨 : 짙은 먹물)으로 칠하고 양테 부분은 이보다 약간 흐린 농묵으로 칠해 양자를 구분하되 모정과 만나는 양테의 가장자리 부분은 약간 더 어둡게 처리하여 미묘한 명암의 차이를 의식하였다. 갓끈의 구슬도 짙고 가는 농묵으로 윤곽선을 그린 다음 그 내부 전체를 같은 농묵으로 칠했다. 구슬의 동그란 형태가 긴장되지 않고 자연스러워 초상 전체의 담담하고 고아한 느낌과 잘 어울린다.

얼굴은 분홍색을 배채한 위에 윤곽선과 주름선을 갈색 필선으로 농담 차이를 주어 가며 그렸다. 그 다음으로 얼굴 전체를 약간 붉은 기가 도는 살색으로 가볍게 담채하였다. 주름선 주변을 약간 더 어둡고 짙게 우려서 명암을 넣되 매우 담담하고 미세한 기분으로 가볍게 선염(渲染 : 색칠할 때 한쪽을 진하게 하고 다른 쪽으로 갈수록 엷고 흐리게 하는 일)하였다. 콧등과 속눈썹이 있는 눈꺼풀 부분은 보다 짙고 강한 필선으로 강조하였다.

눈은 눈동자의 동그란 윤곽을 가는 먹선으로 그리고, 그 내부를 맑은 담묵(淡墨)으로 가볍게 칠한 다음 동공을 짙은 먹으로 강조함으로써 주인공의 청징하고 초연한 내면세계를 매우 효과적으로 전해 주고 있다. 미간의 주름과 더불어 처연한 느낌까지 전해 주고 있다.

수염은 태세(太細)나 건습(乾濕)의 차이로 앞뒤의 차이를 구분하였다. 그 뒤 옅은 담묵으로 가볍게 우려서 수염 전체의 괴체감을 표현하였다. 도포는 흰색을 배채한 위에 먹을 조금 섞었다.

물기를 많이 준 붉은색 필선으로 농담과 굵기의 차이를 그다지 의식하지 않되 다소 필세가 빠르고 능숙한 솜씨로 윤곽선과 옷주름 선을 그렸다. 옷주름 사이에 붉은색을 가볍게 선염하여 미세한 명암의 차이를 표현했다.

직선적인 옷주름은 초상 전체의 고아하고 세련된 느낌을 주도하고 있다. 비단은 올이 매우 촘촘한 통견인데, 아교를 적게 사용하여 반짝임이 없기 때문에 화면 전체에 매우 담담하고 고아한 분위기가 감돈다.

지금은 유리 액자로 표구되어 있지만, 오랫동안 족자로 보관되어 왔었던지 비단에 상하 좌우의 균열이 많은 편이다. 화면의 여러 곳, 특히 화면 하단부에 비단이 박락된 흔적이 많으며 보존 상태가 그다지 좋지 못한 편이다.

김시습초상은 매월당이라는 특출한 인물의 초상화라는 점 외에도, 가채(加彩)가 전혀 없는 조선전기 야복본 초상화 중 걸작이라는 점에서 역사적인 의미가 있다.

참고문헌

『매월당집(梅月堂集)』
『매월당시사유록(梅月堂詩四遊錄)』
『한국의 초상화:형과 영의 예술』(조선미, 돌베개, 2009)
『한국의 초상화:역사 속의 인물과 조우하다』(문화재청 편, 눌와,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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