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유 선생 영정 및 공신녹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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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유 선생 공신녹권
신경유 선생 공신녹권
회화
작품
문화재
조선 중기 무신 신경유(申景礻+谷)의 영정 및 공신녹권.
시도지정문화재
지정 명칭
신경유선생영정및공신녹권(申景裕先生影幀및功臣錄券)
지정기관
경기도
종목
경기도 시도유형문화재(1984년 09월 12일 지정)
소재지
경기 광주시 도척면 진우리 726번지
정의
조선 중기 무신 신경유(申景礻+谷)의 영정 및 공신녹권.
개설

신경유의 초상화는 흰 수염이 전혀 없는 중년 전후의 젊은 모습이다. 그가 43세의 나이로 반정에 참여하여 정사공신(靖社功臣)에 녹훈된 1623년 윤10월부터 공신녹권이 반포되는 1625년 4월 사이에 그려진 정사공신상(靖社功臣像)일 가능성이 크다. 1984년 경기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으나 소재지가 충청북도로 이전됨에 따라 2009년에 해제되었다.

내용
  1. 초상화

도상은 단령(團領)과 사모관대(紗帽冠帶)를 정장한 뒤 교의자(交椅子)에 반우향으로 앉아서 발을 의답(椅踏) 위에 올려놓고 공수(拱手: 두 손을 마주잡음)한 모습이다. 이는 17세기 전반의 전형적인 공신도상이다. 바닥에는 채전이 깔려 있다.

모정(帽頂)이 낮고 날개가 풍만하며 날개 무늬를 크게 넣은 오사모(烏紗帽)가 표현되었다. 또한 단령의 옆 자락을 넓게 터서 아랫부분을 크게 벌리되 강직한 직선으로 단순화시켜 묘사하였다. 그 뒤 단령 뒷자락의 접힌 부분을 날카로운 삼각형으로 추상화시켜 의자 손잡이 위로 강조하듯 표현하였다. 그리고 등받이와 손잡이가 둥글게 말리고 다리 받침대가 변형 사각형을 이루면서 양 끝에 은제 장식을 단 교의자가 묘사되었다. 이러한 형태는 모두 17세기 전반의 공신도상들에서 특징적으로 나타나는 모습이다. 전반적인 화법도 17세기 전반의 전형적인 공신도상들과 유사하다.

얼굴은 배채법(背彩法)을 사용하지 않은 상태에서 굵기의 차이가 있는 붉은 필선으로 기본 윤곽선과 주름선을 잡았다. 그 다음 전체적으로 살색을 가볍게 칠하였다. 그 뒤 오목하게 들어간 부분은 바탕 살색을 거의 그대로 두고 오히려 이마나 뺨, 콧등, 눈두덩처럼 볼록하게 도드라진 부분을 약간 자주색이 도는 붉은색으로 여러 차례 우려서 명암을 표현했다.

눈은 위 눈꺼풀 선을 짙은 먹선으로 그리고 눈동자를 원형으로 선묘하였다. 그 다음 눈동자 안을 중묵으로 동일하게 칠한 뒤 짙은 먹으로 점을 찍어 동공을 표현하였다. 그리고 가는 먹선으로 상하 속눈썹을 묘사하였다. 그 뒤 눈꺼풀 윗부분을 담묵으로 가볍게 우려서 명암을 표현했다.

입술에는 약간 짙은 연지를 칠하되 도드라진 부분을 더 짙게 칠했다. 수염과 머리카락은 짙고 가는 먹선으로 선묘하되 농담의 차이는 주지 않고 건습(乾濕)의 차이만을 나타냈다. 그 뒤 담묵으로 가볍게 우렸으며, 수염에는 부분적으로 갈색 필선도 넣었다. 양미간 사이 콧등 부분의 잔주름을 짧은 세선으로 가볍게 묘사하고 눈 부분의 작은 점까지 묘사했다. 하지만 얼굴 표현은 전반적으로 선묘나 우림이 칼칼하고 거칠어서 다소 단순하고 질박한 편이다.

단령은 매우 짙고 굵은 먹선을 사용하였는데, 옷주름을 직선 중심으로 간결하게 정리하여 묘사했다. 선을 그리듯이 그은 곳이 많아 필세가 다소 약한 편이다. 어떤 곳은 농담 차이가 있는 선을 2, 3개 중복하여 그은 흔적도 보인다. 단령은 전체적으로 다소 어두운 보라 색조를 엷게 칠했는데, 채색의 흔적으로 볼 때 붉은색과 군청색 및 담묵을 각각 따로따로 중복해 칠한 것이 혼색되어 나타난 결과로 생각된다. 단령의 무늬는 짙은 먹선으로 운문(雲文)의 윤곽선을 그리고 운문의 내부를 농묵으로 칠하여 표현했다. 옷주름의 선묘 주변에는 전혀 명암 표현을 가하지 않아 매우 단순하게 표현했다. 단령의 아래 옆 자락이 벌어지며 내부가 드러난 부분과 교의자 뒤로 접혀 올라간 부분은 청색과 녹색 진채에 약간 물기를 많이 주어 단령과 동일한 운문(雲文)을 같은 방식으로 묘사했다.

오사모는 짙은 먹선으로 윤곽선을 그리고 내부를 짙은 농묵으로 동일하게 칠하되 사모의 본체 부분을 가장 짙게 칠하였다. 그리고 위로 솟은 모정 부분을 약간 엷게 칠했으며 양쪽 날개는 이보다도 더 엷게 중묵으로 칠했다. 그 다음 단령과 똑같은 큼직한 운문을 단령과 동일한 방식으로 묘사했다. 목 부분의 흰색 내의(內衣)는 흰색을 비단 위에서 칠하되 턱 바로 아래 부분의 수염 주변은 흰색을 거의 칠하지 않고 비단의 바탕색을 그대로 살렸다. 이것이 바로 배채법을 사용하지 않은 데서 불가피하게 나타나는 질박한 표현의 한계라고 할 수 있다.

흉배는 해치 흉배로서 색상이 매우 선명한 진채를 후채하여 매우 화려하고 정교하게 묘사했다. 먼저 적색 바탕에 금분으로 뇌문(雷文)을 선묘하였다. 그 뒤 윗부분에 적황녹청(赤黃綠靑)의 오색 채운(彩雲)을 그리고, 아랫부분에는 큼직한 모란을 그렸다. 그 다음 중앙에 오른쪽으로 고개를 틀고 입을 벌린 해태 한 마리를 그렸다. 해태는 기본 윤곽을 먹선으로 선묘하였다. 그 뒤 몸체는 흰색으로 칠하였다. 그리고 머리털과 수염은 녹색으로, 코와 입은 적색으로 칠하였다. 그 다음 눈동자는 금채했으며, 머리와 발에는 붉은 갈기를 달았다. 그리고 목과 가슴 부분에는 적황녹청자(赤黃綠靑紫)의 색 띠를 넣어 매우 화려하고 신령스럽게 묘사했다.

관대는 학정금대(鶴頂金帶)로서 금채를 사용했다. 의자는 손잡이와 받침대 모두 외곽선을 짙고 굵은 먹선으로 선묘하였다. 그 뒤 내부를 명암 차이 없이 동일한 농묵으로 칠했다. 받침대의 금속 장식은 흰색과 은분을 사용하여 묘사했다.

의답은 짙은 먹선으로 기본 형태를 선묘한 뒤 다소 황색기가 도는 갈색으로 담채하였다. 그 다음 관념적이나마 명암을 의식하여 담묵으로 매우 가볍게 선염하였다. 그리고 윗면은 네 변의 가장자리에 청색 색 띠를 두른 다음 먹선으로 수 없는 사선을 교대하며 돗자리의 올을 일일이 선묘하였다. 그 뒤에 황색으로 담채했다.

바닥의 채전은 담묵 필선으로 문양의 외곽을 간략히 구획하였다. 그 뒤 각각의 기본색을 가볍게 담채한 다음 다시 진채로 매우 공을 들여 점묘(點描)했다. 그런데 단령 부분에도 일부 진채 점묘가 올라 있는 것으로 볼 때 채전을 맨 마지막에 그렸던 것으로 생각된다.

비단은 올이 약간 굵고 까실까실해서 다소 거친 느낌이 있는 통견이며, 아교와 백반을 적게 올려 반짝임이 거의 없다. 이는 17세기 전반의 일반적인 특징이기도 하다.

  1. 공신녹권

공신녹권은 정사공신녹권으로서 기본적인 형태는 통상의 예와 같으며, 두루마리 뒷면의 구수(句首) 부분에 “정사공신 신경유(靖社功臣申景礻+谷)”의 첨(簽)이 붙어 있고, 미자(尾子) 부분에는 “유백증이 짓고 이후기가 쓰다(兪伯曾製 李厚基書)”라는 첨이 붙어 있다.

녹권 교서의 반포일은 “천개 오년(1625) 사월 일(天啓五年 四月日)”이며, 표제는 “교 분충찬모입기 정사공신 가의대부 경상우도병마수군절도사 동평군 신경유 서(敎 奮忠贊謨立紀 靖社功臣 嘉義大夫 慶尙右道兵馬水軍節度使 東平君 申景礻+谷 書)”라 쓰여 있다.

의의와 평가

신경유의 영정은 얼굴 묘법이 다소 미숙하고 질박한 감은 있으나 채색이 매우 선명하고 정치한 편이다. 강직하고 단순한 얼굴과 신체 및 오사모의 형태와 필선 그리고 화려하고 장식적인 채전과 흉배의 채색이 이원적으로 결합되어 매우 독특한 심미적 효과를 준다. 17세기 전반 공신도상의 전형적인 특징을 잘 보여준다. 6.25 때 족자의 상하축을 잘라내고 초상화를 세로로 좁게 세 번 접어서 피난했기 때문에 현재는 다소 손상된 상태로 전해지고 있다.

공신녹권 역시 약간의 손상은 있지만 두루마리를 묶는 끈(帶)과 고리(別子)까지 원형이 잘 남아 있어 조선 중기의 두루마리 표구를 연구하는 데 매우 중요한 자료이다.

참고문헌

『경기도문화재총람: 도지정편. 1-3』(경기도, 2005)
『한국의 초상화』(조선미, 열화당, 19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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