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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리 동구릉 목릉 정자각은 경기도 구리시에 있는 조선 후기 동구릉에 있는 목릉에 딸린 정자각(丁字閣)으로 능건축이다. 목릉은 조선 14대 선조와 원비 의인황후 박씨, 계비 인목황후 김씨의 능이다. 동구릉 가장 깊숙한 곳에 자리하고 있으며 각기 다른 언덕에 왕과 왕비의 능을 조성해 하나의 정자각과 3기의 능이 자리하고 있다. 선조의 능 앞에 세워진 정자각은 정전과 배위청이 丁자형 평면을 이룬다. 정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이며, 배위청은 정면 1칸, 측면 2칸이다. 조선 왕릉의 정자각 중 유일한 다포형식의 건물로 임진왜란 직후의 목조건축 연구에 귀중한 자료이다.
구리 동구릉 목릉 정자각 (九里 東九陵 穆陵 丁字閣)
구리 동구릉 목릉 정자각은 경기도 구리시에 있는 조선 후기 동구릉에 있는 목릉에 딸린 정자각(丁字閣)으로 능건축이다. 목릉은 조선 14대 선조와 원비 의인황후 박씨, 계비 인목황후 김씨의 능이다. 동구릉 가장 깊숙한 곳에 자리하고 있으며 각기 다른 언덕에 왕과 왕비의 능을 조성해 하나의 정자각과 3기의 능이 자리하고 있다. 선조의 능 앞에 세워진 정자각은 정전과 배위청이 丁자형 평면을 이룬다. 정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이며, 배위청은 정면 1칸, 측면 2칸이다. 조선 왕릉의 정자각 중 유일한 다포형식의 건물로 임진왜란 직후의 목조건축 연구에 귀중한 자료이다.
권필(權韠)은 조선 중기의 시인이다. 본관은 안동. 자는 여장, 호는 석주이다. 선조 때 활동했던 시인으로, 목릉성세(穆陵盛世)로 일컬어졌던 당대 문단에서 이안눌과 함께 ‘이재’로 불렸다. 호방하고 매사 얽매이지 않는 성품을 지녔으며, 당나라 시대 시풍의 낭만적 서정과 당대 현실을 풍자한 사회성 높은 시를 많이 남겼다. 그의 저술로 『석주집』과 한문소설 「주생전」이 현재 전해진다.
권필 (權韠)
권필(權韠)은 조선 중기의 시인이다. 본관은 안동. 자는 여장, 호는 석주이다. 선조 때 활동했던 시인으로, 목릉성세(穆陵盛世)로 일컬어졌던 당대 문단에서 이안눌과 함께 ‘이재’로 불렸다. 호방하고 매사 얽매이지 않는 성품을 지녔으며, 당나라 시대 시풍의 낭만적 서정과 당대 현실을 풍자한 사회성 높은 시를 많이 남겼다. 그의 저술로 『석주집』과 한문소설 「주생전」이 현재 전해진다.
인목왕후는 조선시대, 제14대 선조의 계비이다. 본관은 연안(延安)이고, 연흥부원군(延興府院君) 김제남(金悌男)과 광산부부인(光山府夫人) 노씨의 딸이다. 1602년(선조 35) 15세에 선조의 계비가 되고 1603년에 정명공주(貞明公主)를, 1606년에 영창대군(永昌大君)을 낳았다. 1613년 계축옥사(癸丑獄事)로 영창대군이 유배되어 죽었고 본인은 폐위되어 서궁(西宮)에 유폐되었다. 인조반정으로 복권되었다.
인목왕후 (仁穆王后)
인목왕후는 조선시대, 제14대 선조의 계비이다. 본관은 연안(延安)이고, 연흥부원군(延興府院君) 김제남(金悌男)과 광산부부인(光山府夫人) 노씨의 딸이다. 1602년(선조 35) 15세에 선조의 계비가 되고 1603년에 정명공주(貞明公主)를, 1606년에 영창대군(永昌大君)을 낳았다. 1613년 계축옥사(癸丑獄事)로 영창대군이 유배되어 죽었고 본인은 폐위되어 서궁(西宮)에 유폐되었다. 인조반정으로 복권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