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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부흥운동(高句麗復興運動)은 668년 평양성 함락 이후 고구려 부흥을 위한 유민의 제반 활동이다. 668년 9월 평양성이 함락되었지만, 당나라에 불만을 품고 저항한 유민도 나타났다. 검모잠과 안승은 한성을 중심으로 왕국의 재건을 추구하였다. 두만강과 송화강 유역 그리고 요동 지역의 고구려 주요 거점에서도 부흥운동이 전개되었다. 이 중에서 한성의 고구려부흥운동 세력은 673년 말까지 신라의 지원을 받으며 당나라에 저항하였다. 그러나 임진강 유역에서 대패하며 재기하지 못하였다. 각지의 부흥운동 역시 성공하지 못하였다.
고구려 부흥운동 (高句麗 復興運動)
고구려부흥운동(高句麗復興運動)은 668년 평양성 함락 이후 고구려 부흥을 위한 유민의 제반 활동이다. 668년 9월 평양성이 함락되었지만, 당나라에 불만을 품고 저항한 유민도 나타났다. 검모잠과 안승은 한성을 중심으로 왕국의 재건을 추구하였다. 두만강과 송화강 유역 그리고 요동 지역의 고구려 주요 거점에서도 부흥운동이 전개되었다. 이 중에서 한성의 고구려부흥운동 세력은 673년 말까지 신라의 지원을 받으며 당나라에 저항하였다. 그러나 임진강 유역에서 대패하며 재기하지 못하였다. 각지의 부흥운동 역시 성공하지 못하였다.
고구려의 제28대 보장왕의 외손자로, 고구려 멸망 후 검모잠에 의하여 왕으로 추대되었으나, 신라로 망명하여 신라의 귀족이 된 왕족·귀족.
안승 (安勝)
고구려의 제28대 보장왕의 외손자로, 고구려 멸망 후 검모잠에 의하여 왕으로 추대되었으나, 신라로 망명하여 신라의 귀족이 된 왕족·귀족.
대문은 보덕국왕 안승이 신라 왕경으로 떠난 뒤 남아 있다가 684년 반란 모의 발각으로 처형된 고구려 유민이다. 대문의 죽음을 목격한 보덕성민들은 관리를 살해하고 반란을 일으켰다. 반란 진압 이후 보덕성민들은 남쪽 주군으로 사민된다.
대문 (大文)
대문은 보덕국왕 안승이 신라 왕경으로 떠난 뒤 남아 있다가 684년 반란 모의 발각으로 처형된 고구려 유민이다. 대문의 죽음을 목격한 보덕성민들은 관리를 살해하고 반란을 일으켰다. 반란 진압 이후 보덕성민들은 남쪽 주군으로 사민된다.
고연무는 고구려 부흥군의 지휘관으로, 보덕국의 대장군을 지냈다. 670년 3월 신라의 사찬 설오유와 함께 각각 정병 1만 명을 이끌고 압록강을 건너 옥골까지 진격하였고, 4월 말갈 및 당의 군대와 전투하였다. 680년 보덕국의 태대형 대장군으로 안승의 표문을 신라 문무왕에게 전달하였다.
고연무 (高延武)
고연무는 고구려 부흥군의 지휘관으로, 보덕국의 대장군을 지냈다. 670년 3월 신라의 사찬 설오유와 함께 각각 정병 1만 명을 이끌고 압록강을 건너 옥골까지 진격하였고, 4월 말갈 및 당의 군대와 전투하였다. 680년 보덕국의 태대형 대장군으로 안승의 표문을 신라 문무왕에게 전달하였다.
전북특별자치도 익산시 왕궁면 일원에 있는 삼국시대 백제와 통일신라 시기에 축성된 성곽. 산성·왕궁터.
모질메산성 (모질메山城)
전북특별자치도 익산시 왕궁면 일원에 있는 삼국시대 백제와 통일신라 시기에 축성된 성곽. 산성·왕궁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