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덕국왕(報德國王) · 안순(安舜)이라고도 한다. 기록에 따라 연정토(淵淨土)의 아들, 또는 보장왕의 서자, 혹은 외손자라고 전한다. 아마도 연정토의 아들로서 보장왕의 외손자였던 것같다.
고구려 멸망 후 서해의 사야도(史冶島)에 피신하여 있었는데, 670년 고구려 부흥운동을 일으킨 검모잠(劒牟岑)에 의하여 추대되어 한성(漢城 : 지금의 황해도 재령 부근)에서 왕으로 즉위하였다. 소형(小兄) 다식(多式)을 신라에 보내어 구원을 요청하여 문무왕은 그를 고구려왕으로 봉하였다.
이어 당군의 압박을 받게 되자, 이에 대처하는 방안을 둘러싸고 검모잠과 대립하게 되어 그를 죽인 뒤 무리를 이끌고 신라로 투항하였다. 신라는 안승 집단을 금마저(金馬渚 : 지금의 전북특별자치도 익산)에 안치하였다. 674년(문무왕 14) 보덕국왕에 봉해졌으며 680년에는 문무왕의 질녀를 아내로 맞이하게 되었다.
683년 경주로 초청되어 소판(蘇判)의 관등과 김씨(金氏) 성을 부여받고, 수도에 거주하게 되었다. 그의 근거지인 보덕국과 격리된 채 신라 중앙귀족이 되었다. 보덕국은 684년 그 주민이 반란을 기도하다가 진압되어 소멸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