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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부는 고려시대 왕경(王京)에 설치되었던 특별 행정구역, 또는 왕경 인근에 있던 지방 행정구역이다. 995년(성종 14)에 처음 설치되었다가 1018년(현종 9)에 폐지되었고, 1062년(문종 16)에 지개성부사(知開城府事)를 두었다. 1308년(충렬왕 34)에 도성 안을 관할하는 개성부를 다시 두었다.
개성부 (開城府)
개성부는 고려시대 왕경(王京)에 설치되었던 특별 행정구역, 또는 왕경 인근에 있던 지방 행정구역이다. 995년(성종 14)에 처음 설치되었다가 1018년(현종 9)에 폐지되었고, 1062년(문종 16)에 지개성부사(知開城府事)를 두었다. 1308년(충렬왕 34)에 도성 안을 관할하는 개성부를 다시 두었다.
고려시대 왕경을 뜻하는 적현[赤縣, 京縣]과 함께 경기를 구성했던 개경 인근의 군현.
기현 (畿縣)
고려시대 왕경을 뜻하는 적현[赤縣, 京縣]과 함께 경기를 구성했던 개경 인근의 군현.
1905년부터 1907년까지 동래감리·동래부윤과 의정부참정대신·외부대신 사이에 오고간 보고서 및 훈령을 모아 엮은 관찬서.
동래항안 (東萊港案)
1905년부터 1907년까지 동래감리·동래부윤과 의정부참정대신·외부대신 사이에 오고간 보고서 및 훈령을 모아 엮은 관찬서.
권고는 고려 후기 검교시중(檢校侍中)을 역임한 세족(世族) 출신 문신이다. 1327년(충숙왕 14) 경주부윤(慶州府尹)에 부임한 바 있고, 지첨의부사를 지내고, 뒤에 문화군(文化君)으로 봉해졌다가 1355년(공민왕 4) 영가군(永嘉君)으로 봉해졌다. 벼슬이 검교시중에 이르렀으며, 86세에 죽었다. 시호는 충정(忠靖)이다.
권고 (權皐)
권고는 고려 후기 검교시중(檢校侍中)을 역임한 세족(世族) 출신 문신이다. 1327년(충숙왕 14) 경주부윤(慶州府尹)에 부임한 바 있고, 지첨의부사를 지내고, 뒤에 문화군(文化君)으로 봉해졌다가 1355년(공민왕 4) 영가군(永嘉君)으로 봉해졌다. 벼슬이 검교시중에 이르렀으며, 86세에 죽었다. 시호는 충정(忠靖)이다.
수령은 고려시대 이후 주(州)·부(府)·군(郡)·현(縣)의 각 고을을 맡아 다스린 지방관이다. 고려시대에는 모든 군현에 수령을 파견하지 않았으나 조선시대가 되면서 전국 군현에 수령을 파견하게 되었다. 조선시대 수령의 품계는 종2품에서 종6품까지 다양하지만 모두 관찰사의 관할하에 있었다. 조선은 원활한 수령제 운영을 위하여 수령의 선발, 임기, 고과의 기준을 정비하였다. 수령은 군현에서 수령칠사를 담당하였고 수령의 하부 행정 체계로는 향리와 면리임이 있고, 자문 및 보좌 기관으로 유향소가 존재하였다.
수령 (守令)
수령은 고려시대 이후 주(州)·부(府)·군(郡)·현(縣)의 각 고을을 맡아 다스린 지방관이다. 고려시대에는 모든 군현에 수령을 파견하지 않았으나 조선시대가 되면서 전국 군현에 수령을 파견하게 되었다. 조선시대 수령의 품계는 종2품에서 종6품까지 다양하지만 모두 관찰사의 관할하에 있었다. 조선은 원활한 수령제 운영을 위하여 수령의 선발, 임기, 고과의 기준을 정비하였다. 수령은 군현에서 수령칠사를 담당하였고 수령의 하부 행정 체계로는 향리와 면리임이 있고, 자문 및 보좌 기관으로 유향소가 존재하였다.
매년 7월15일과 10월15일에 서울 북교 여단(厲壇)에서 여귀(厲鬼)로 인한 탈을 막고자 행하던 무속의례.
여제 (厲祭)
매년 7월15일과 10월15일에 서울 북교 여단(厲壇)에서 여귀(厲鬼)로 인한 탈을 막고자 행하던 무속의례.
일제강점기 충청북도지사, 중추원참의, 이왕직장관 등을 역임한 관료. 친일반민족행위자.
장헌식 (張憲植)
일제강점기 충청북도지사, 중추원참의, 이왕직장관 등을 역임한 관료. 친일반민족행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