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블라디보스토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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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거류민회는 1920년 5월 러시아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 일본 총영사관이 한인들을 회유, 통제하기 위해 조직한 자치단체이다. 신한촌(新韓村)에 사무소를 두었으며, 일제가 한인들을 회유하기 위한 기관으로 관광단, 음악단을 꾸려 경성을 시찰하기도 하였다. 적극적인 친일 활동을 전개했던 간화회(墾話會)와는 차별성을 가졌다.
조선인거류민회 (朝鮮人居留民會)
조선인거류민회는 1920년 5월 러시아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 일본 총영사관이 한인들을 회유, 통제하기 위해 조직한 자치단체이다. 신한촌(新韓村)에 사무소를 두었으며, 일제가 한인들을 회유하기 위한 기관으로 관광단, 음악단을 꾸려 경성을 시찰하기도 하였다. 적극적인 친일 활동을 전개했던 간화회(墾話會)와는 차별성을 가졌다.
일제강점기 때, 철혈광복단, 북로군정서 등에서 군자금 모금 활동을 전개한 독립운동가.
임국정 (林國楨)
일제강점기 때, 철혈광복단, 북로군정서 등에서 군자금 모금 활동을 전개한 독립운동가.
개척리는 블라디보스토크에 있었던 초기 한인마을이다. 개척리는 ‘개체기’, ‘카레이스카야 슬라보트카’라고도 불렸다. 1870년대 군항 건설과 연해주 개발이 시작되면서 일자리를 찾아온 한인들이 시 광장 주변에 살았다. 1885년과 1892년 콜레라가 발생하자 시 당국은 한인 거주지를 아무르만에 접한 남쪽 언덕으로 옮겼다. 이곳을 러시아인들이 ‘고려인촌’, ‘한인촌’이란 의미로 ‘카레이스카야 슬라보드카’라 하였다. 1911년 러시아 당국은 전염병을 핑계로 개척리 거주 한인들을 시의 서북쪽으로 이주시켰다. 새로운 한인촌은 이후 한인사회의 새로운 중심지로 기능하였다.
개척리 (開拓里)
개척리는 블라디보스토크에 있었던 초기 한인마을이다. 개척리는 ‘개체기’, ‘카레이스카야 슬라보트카’라고도 불렸다. 1870년대 군항 건설과 연해주 개발이 시작되면서 일자리를 찾아온 한인들이 시 광장 주변에 살았다. 1885년과 1892년 콜레라가 발생하자 시 당국은 한인 거주지를 아무르만에 접한 남쪽 언덕으로 옮겼다. 이곳을 러시아인들이 ‘고려인촌’, ‘한인촌’이란 의미로 ‘카레이스카야 슬라보드카’라 하였다. 1911년 러시아 당국은 전염병을 핑계로 개척리 거주 한인들을 시의 서북쪽으로 이주시켰다. 새로운 한인촌은 이후 한인사회의 새로운 중심지로 기능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