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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미상 인물의 상량문·시·제문·축문 등을 수록한 시문집.
가헌집 (稼軒集)
조선 후기, 미상 인물의 상량문·시·제문·축문 등을 수록한 시문집.
『상재유고』는 조선 후기부터 개항기까지 생존한 학자 상재 장석진의 시문을 엮은 문집이다. 성리학자로 이름난 임헌회(任憲晦)의 사승 관계 및 전우(田愚)·김기면(金基勉)·김병섭(金秉燮)·안교익(安敎翼)·한서교(韓序敎) 등과의 교유 관계를 통한 당대의 주요 학문 세계와 함께 성리학적 역학(曆學) 등에 대해 살펴보기에 적당한 문집이다. 7권 2책의 활자본이다.
상재유고 (常齋遺稿)
『상재유고』는 조선 후기부터 개항기까지 생존한 학자 상재 장석진의 시문을 엮은 문집이다. 성리학자로 이름난 임헌회(任憲晦)의 사승 관계 및 전우(田愚)·김기면(金基勉)·김병섭(金秉燮)·안교익(安敎翼)·한서교(韓序敎) 등과의 교유 관계를 통한 당대의 주요 학문 세계와 함께 성리학적 역학(曆學) 등에 대해 살펴보기에 적당한 문집이다. 7권 2책의 활자본이다.
기해박해는 1839년(헌종 5)에 일어난 천주교 박해이다. 조선 천주교회는 1801년(순조 1) 신유박해 이후, 30여 년간 평신도만의 신앙 공동체로 유지해 왔다. 1811년경부터는 성직자 영입 운동을 추진하여 1836년부터 프랑스 선교사들이 조선에 잠입하여 사목하면서 신자 수가 약 1만 명으로 증가하였다. 이에 위기 의식을 느낀 조정에서 대대적인 천주교 박해를 단행하였다. 전국적 규모로 신자들의 피해가 커서 서울과 경기 지방에서만 200명 이상이 체포되었고, 순교자 70명은 1925년 시복되었다가 1984년 시성되었다.
기해박해 (己亥迫害)
기해박해는 1839년(헌종 5)에 일어난 천주교 박해이다. 조선 천주교회는 1801년(순조 1) 신유박해 이후, 30여 년간 평신도만의 신앙 공동체로 유지해 왔다. 1811년경부터는 성직자 영입 운동을 추진하여 1836년부터 프랑스 선교사들이 조선에 잠입하여 사목하면서 신자 수가 약 1만 명으로 증가하였다. 이에 위기 의식을 느낀 조정에서 대대적인 천주교 박해를 단행하였다. 전국적 규모로 신자들의 피해가 커서 서울과 경기 지방에서만 200명 이상이 체포되었고, 순교자 70명은 1925년 시복되었다가 1984년 시성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