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옥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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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광익회옥편』은 1013년 송나라 진종 연간에 진팽년 등이 칙명을 받아 중수한 자전이다. 본래의 『옥편』(543년)에서 주석을 간략히 하고 글자 수를 22,700여 자로 늘린 것이 특징이다. 본래의 방대한 주석을 삭제하면서 학문적 가치는 낮아졌지만, 대중적 효용성은 증가하여 명대 이전까지 널리 사용되었다. 『조선왕조실록』에 의하면 1412년에 간행된 기록이 존재하고 조선에서도 보편적으로 사용되었다. 현재까지 한국에서 자전을 ‘옥편’이라 부르는 데 영향을 미쳤다. 규장각에 현재 3종의 전근대 판본이 소장되어 있다.
대광익회옥편 (大廣益會玉篇)
『대광익회옥편』은 1013년 송나라 진종 연간에 진팽년 등이 칙명을 받아 중수한 자전이다. 본래의 『옥편』(543년)에서 주석을 간략히 하고 글자 수를 22,700여 자로 늘린 것이 특징이다. 본래의 방대한 주석을 삭제하면서 학문적 가치는 낮아졌지만, 대중적 효용성은 증가하여 명대 이전까지 널리 사용되었다. 『조선왕조실록』에 의하면 1412년에 간행된 기록이 존재하고 조선에서도 보편적으로 사용되었다. 현재까지 한국에서 자전을 ‘옥편’이라 부르는 데 영향을 미쳤다. 규장각에 현재 3종의 전근대 판본이 소장되어 있다.
고려시대 권득령의 주관으로 행균의 『용감수경』을 복각한 자전. 관판본·복각본.
용감수경 권3~4 (龍龕手鏡 卷三~四)
고려시대 권득령의 주관으로 행균의 『용감수경』을 복각한 자전. 관판본·복각본.
『주해천자문』은 개원사에서 홍성원의 글씨를 판하로 하여 1752년에 간행한 교재이다. 목판본으로 불분권 1책이다. 4글자씩 125행으로 각 행 사이에 작은 행을 하나 더 만들어 어구의 주해를 기록하였다. 각 글자의 음훈을 2-3개까지 달아 한자의 의미를 정밀하고 체계적으로 표현하였다. 이 책의 내용은 전반적으로 『석봉천자문』과 일치한다. 현재 1804년 간행된 중간본과 함께 서울대학교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다.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소에서 1973년 『동양학총서』로 영인되었다. 이 책은 국가에서 간행된 것이 아닌데도 규범적이고 공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다.
주해천자문 (註解千字文)
『주해천자문』은 개원사에서 홍성원의 글씨를 판하로 하여 1752년에 간행한 교재이다. 목판본으로 불분권 1책이다. 4글자씩 125행으로 각 행 사이에 작은 행을 하나 더 만들어 어구의 주해를 기록하였다. 각 글자의 음훈을 2-3개까지 달아 한자의 의미를 정밀하고 체계적으로 표현하였다. 이 책의 내용은 전반적으로 『석봉천자문』과 일치한다. 현재 1804년 간행된 중간본과 함께 서울대학교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다.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소에서 1973년 『동양학총서』로 영인되었다. 이 책은 국가에서 간행된 것이 아닌데도 규범적이고 공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