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감수경』은 997년 요나라의 승려 행균(行均)이 편찬한 한자(漢字)의 자전(字典)이다. 이를 복각한 연대는 알 수 없으나, 권4의 끝에 “나주목관조각4권 입구십삼장(羅州牧官雕刻四卷 入九十三丈)”이라 쓰고, 줄을 바꾸어 “사녹장서기차량온령 권득령(司錄掌書記借良醞令 權得齡)”이라 새겨져 있어, 나주에서 권득령의 주관으로 간행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의 생몰년을 알 수 없어 편찬 연대를 밝힐 수 없지만, 고려의 복각이 남송시대까지 내려가지 않은 것과, 요나라가 망한 것이 1125년인 점으로 미루어 11세기경에 간행한 것으로 추정된다.
『몽산화상법어약록(蒙山和尙法語略錄)』에 의하면, 1472년(성종 3) 인수대비(仁粹大妃)가 『용감수경』 50벌을 찍게 하였다고 하나 전하는 것이 없다.
그 밖에 1563년(명종 18) 개판(開板)된 『용감수감』의 판목이 황해도 귀진사(歸眞寺)에 소장되어 있었다고 한다. 이 판본은 8권으로 되어 있고, 책머리에 “귀진사□□전중창억만선록동참불국동생공덕문(歸眞寺□□殿重創億萬善緣同參佛國同生功德文)”이라는 글과 권8의 끝에 “판선종사도대선사겸봉은사주지(判禪宗事都大禪師兼奉恩寺住持)”, “대공덕주판교종사도대교사겸봉선사주지이천측(大功德主判敎宗事都大敎師兼奉先寺住持二天則)”, “가정사십이년고덕산귀진사개판(嘉靖四十二年高德山歸眞寺開板)” 등의 간기가 있으나, 원판에는 훼손된 부분이 적지 않았다고 한다.
1997년 국보로 지정되었다. 목판본. 이 책의 원형을 가진 『용감수경』은 중국에서는 벌써 없어지고 남송(南宋) 때에 와서 『용감수감(龍龕手鑑)』으로 명칭이 바뀌어 나왔으므로, 요나라 때의 원판본은 일찍부터 전해지지 않고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는 금강산 유점사(楡岾寺)에서 발견된 『용감수경』 권1과 최남선(崔南善)의 장서 가운데에서 발견된 권3 및 권4가 있는데, 이 책의 원본은 고려시대의 복각본(覆刻本)으로 추정되고 있다.
1996년 11월 28일 보물에서 등급이 조정되었고, 고려대학교와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다.
종래 중국의 자전에서 볼 수 있는 일반적인 형태와 달리 글자의 배열을 부수별로 구분한 뒤 각 부수 안에서 사성(四聲)의 운(韻)에 따라 배열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으며, 이체자와 속자까지도 망라하여 해설하였다.
또한 편찬자인 행균이 승려였으므로 불전에 나오는 글자가 포함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용감수경』의 원형으로 천하의 고본(孤本)이라는 점에서 서지학 연구에 귀중한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