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외별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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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초는 고려시대에 용맹한 자들을 특별히 가려 뽑아 조직한 특수 부대이다. 고려시대의 별초는 처음 명종대에 조위총의 저항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정규군 내의 정예한 자들을 임시로 뽑아 조직되었던 선봉대였다. 그런데 그 임시로 뽑아 쓴다는 의미가 점차 국내외의 비상 시기를 당해 전국적으로 상설의 면이 보이는 한편, 기존의 무력 장치보다 더 많은 활약을 하였던 것으로 나타난다. 이것은 이미 기존의 병제가 유명무실화된 상황에서 별초라는 새로운 동원 체제로 대체되어 가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별초는 중앙의 경별초와 지방의 외별초로 구분된다.
별초 (別抄)
별초는 고려시대에 용맹한 자들을 특별히 가려 뽑아 조직한 특수 부대이다. 고려시대의 별초는 처음 명종대에 조위총의 저항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정규군 내의 정예한 자들을 임시로 뽑아 조직되었던 선봉대였다. 그런데 그 임시로 뽑아 쓴다는 의미가 점차 국내외의 비상 시기를 당해 전국적으로 상설의 면이 보이는 한편, 기존의 무력 장치보다 더 많은 활약을 하였던 것으로 나타난다. 이것은 이미 기존의 병제가 유명무실화된 상황에서 별초라는 새로운 동원 체제로 대체되어 가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별초는 중앙의 경별초와 지방의 외별초로 구분된다.
경주 별초군의 난은 1202년(신종 5) 경주의 별초군이 일으킨 저항이다. 경주 별초군이 영주를 공격하였던 것은 저항의 지역적인 기반을 확보하기 위한 것으로 보이며, 1193년(명종 23) 이후부터 저항 세력으로 잔존하고 있었던 운문적(雲門賊)과 부인사⋅동화사 등의 사원 세력과 합세하였던 점이 주목된다. 이는 경주와 경상도 일대의 저항 세력이 연합 전선을 형성하고 있었다는 것과 그 배경이 중앙에 대한 위기감에 있었음을 보여 준다. 특히 사원 세력의 참여는 최씨 무신 정권의 사원 정책이 그 원인이었다고 여겨진다.
경주 별초군의 난 (慶州 別抄軍의 亂)
경주 별초군의 난은 1202년(신종 5) 경주의 별초군이 일으킨 저항이다. 경주 별초군이 영주를 공격하였던 것은 저항의 지역적인 기반을 확보하기 위한 것으로 보이며, 1193년(명종 23) 이후부터 저항 세력으로 잔존하고 있었던 운문적(雲門賊)과 부인사⋅동화사 등의 사원 세력과 합세하였던 점이 주목된다. 이는 경주와 경상도 일대의 저항 세력이 연합 전선을 형성하고 있었다는 것과 그 배경이 중앙에 대한 위기감에 있었음을 보여 준다. 특히 사원 세력의 참여는 최씨 무신 정권의 사원 정책이 그 원인이었다고 여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