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별초군의 난 ( )

고려시대사
사건
1202년(신종 5), 경주의 별초군이 일으킨 저항.
사건/사회운동
발생 시기
1202년(신종 5)
종결 시기
미상
발생 장소
경주(慶州)
관련 인물
이극인(李克仁)|견수(堅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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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요약

경주 별초군의 난은 1202년(신종 5) 경주의 별초군이 일으킨 저항이다. 경주 별초군이 영주를 공격하였던 것은 저항의 지역적인 기반을 확보하기 위한 것으로 보이며, 1193년(명종 23) 이후부터 저항 세력으로 잔존하고 있었던 운문적(雲門賊)과 부인사⋅동화사 등의 사원 세력과 합세하였던 점이 주목된다. 이는 경주와 경상도 일대의 저항 세력이 연합 전선을 형성하고 있었다는 것과 그 배경이 중앙에 대한 위기감에 있었음을 보여 준다. 특히 사원 세력의 참여는 최씨 무신 정권의 사원 정책이 그 원인이었다고 여겨진다.

정의
1202년(신종 5), 경주의 별초군이 일으킨 저항.
발단

별초군(別抄軍)은 경별초(京別抄)와 외별초(外別抄)로 구분되고, 경주 별초군은 외별초로서 무신 집권기의 지방 주현군(州縣軍)을 대신하여 새롭게 편성한 지방군 조직의 하나였다.

경주 별초군은 원래 영주(永州) 사람들과 사이가 좋지 않았다. 그리하여 1202년(신종 5) 10월 경주 별초군이 운문(雲門)의 반란 세력과 무신 정권에 불만을 품고 있던 부인사(符仁寺) · 동화사(桐華寺)의 승려를 끌어들여 영주를 공격하였다. 이에 영주 사람 이극인(李克仁) · 견수(堅守) 등이 정예를 거느리고 싸우자 경주 별초군은 크게 패배하고 물러났다.

경과 및 결과

이 저항은 중앙에 큰 충격을 주어 집권자 최충헌(崔忠獻)은 경주를 토벌하여 저항의 뿌리를 뽑도록 결정하였다. 이 소식을 들은 경주 사람들은 ‘신라 부흥(新羅復興)’을 표방하고 장군 석성주(石成柱)를 왕으로 추대하려 하였으나 오히려 석성주의 밀고로 실패하였다.

이에 저항 세력은 항복을 청했으나, 최충헌은 오히려 초토처치병마사(招討處置兵馬使)를 3도로 나누어 파견해 토벌하였다. 저항이 평정된 1204년(희종 즉위년) 동경 유수(東京留守)를 지경주사(知慶州事)로 강등하고, 경주 소관의 주 · 부 · 군 · 현과 향(鄕) · 부곡(部曲)을 안동(安東)과 상주(尙州)에 나누어 소속시켰으며, 경상도를 상진안동도(尙晉安東道)로 개칭하였다.

의의 및 평가

이 저항은 무신 정권 이후에 일어난 저항 중의 하나였지만, 저항의 성격이 고려 왕조 자체를 부정하려는 단계로 발전하였다. 따라서 항복 의사에도 불구하고 중앙 정부의 강경한 토벌을 당하였다.

참고문헌

원전

『고려사(高麗史)』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단행본

신안식, 『고려 무인정권과 지방사회』(경인문화사, 2002)
이정신, 『고려 무신정권기 농민·천민 항쟁 연구』(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1991)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7(탐구당, 1973)
진단학회, 『한국사』중세편(을유문화사, 1961)

논문

신안식, 「고려중기 삼국부흥운동의 ‘지역성’과 ‘저항성’」(『한국중세사연구』 47, 한국중세사학회, 2016)
김윤곤, 「별초군의 조직」(『신편 한국사』 18, 국사편찬위원회, 1993)
김호동, 「고려무신정권하의 경주민의 동태와 신라부흥운동」(『민족문화논총』 2·3집, 영남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1982)
집필자
신안식(가톨릭대학교 연구교수, 고려시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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