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경주 별초군의 난은 1202년(신종 5) 경주의 별초군이 일으킨 저항이다. 경주 별초군이 영주를 공격하였던 것은 저항의 지역적인 기반을 확보하기 위한 것으로 보이며, 1193년(명종 23) 이후부터 저항 세력으로 잔존하고 있었던 운문적(雲門賊)과 부인사⋅동화사 등의 사원 세력과 합세하였던 점이 주목된다. 이는 경주와 경상도 일대의 저항 세력이 연합 전선을 형성하고 있었다는 것과 그 배경이 중앙에 대한 위기감에 있었음을 보여 준다. 특히 사원 세력의 참여는 최씨 무신 정권의 사원 정책이 그 원인이었다고 여겨진다.
정의
1202년(신종 5), 경주의 별초군이 일으킨 저항.
발단
경과 및 결과
이에 저항 세력은 항복을 청했으나, 최충헌은 오히려 초토처치병마사(招討處置兵馬使)를 3도로 나누어 파견해 토벌하였다. 저항이 평정된 1204년(희종 즉위년) 동경 유수(東京留守)를 지경주사(知慶州事)로 강등하고, 경주 소관의 주 · 부 · 군 · 현과 향(鄕) · 부곡(部曲)을 안동(安東)과 상주(尙州)에 나누어 소속시켰으며, 경상도를 상진안동도(尙晉安東道)로 개칭하였다.
의의 및 평가
참고문헌
원전
- 『고려사(高麗史)』
-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단행본
- 신안식, 『고려 무인정권과 지방사회』(경인문화사, 2002)
- 이정신, 『고려 무신정권기 농민·천민 항쟁 연구』(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1991)
-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7(탐구당, 1973)
- 진단학회, 『한국사』중세편(을유문화사, 1961)
논문
- 신안식, 「고려중기 삼국부흥운동의 ‘지역성’과 ‘저항성’」(『한국중세사연구』 47, 한국중세사학회, 2016)
- 김윤곤, 「별초군의 조직」(『신편 한국사』 18, 국사편찬위원회, 1993)
- 김호동, 「고려무신정권하의 경주민의 동태와 신라부흥운동」(『민족문화논총』 2·3집, 영남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1982)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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