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군사 ()

목차
관련 정보
고려시대사
제도
고려시대 광군을 통제하던 관서.
목차
정의
고려시대 광군을 통제하던 관서.
내용

통수부(統帥府)로서의 광군사는 947년(정종 2) 개경에 설치되었고, 『고려사』 백관지(百官志) 제사도감각색(諸司都監各色) 광군사조(光軍司條)에 의하면, 그 명칭이 광군도감(光軍都監)으로 바뀌었다가 1011년(현종 2) 광군사로 다시 복귀되었음을 알 수 있다. 광군사의 존재는 광군이 비록 각지의 호족 지휘 아래 농민으로 조직된 예비군이라 하더라도, 중앙정부의 전국적인 통제 아래 통일된 군사조직이었다는 점을 시사해준다.

특히, 광군사를 광군도감으로 개칭한 것은 당나라의 부병제로 병제를 개혁하려는 의도 아래 시행되었음을 의미한다. 광군사가 광군도감으로 개칭된 것은 광군을 개편하여 중앙의 육위(六衛)에 소속하는 지방의 절충부(折衝府)로 만드는 일을 관장하여 처리하게 하기 위한 관사(官司)로 전환시키기 위한 조처로 추측된다.

그러나 1011년에 다시 광군도감을 광군사로 환원시킨 것은 당나라의 부병제를 모방하여 실시해보려던 노력이 실패하였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요컨대, 광군사란 호족 지휘 아래의 군사력을 중앙정부에서 직접 관장하기 위한 전 단계의 조처로 시행하였는데, 이러한 과정을 거친 뒤 지방의 농민군은 주현군으로 개편될 수 있었던 것이다.

참고문헌

『고려사(高麗史)』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고려병제사연구(高麗兵制史硏究)』(이기백, 일조각, 1968)
「고려 광군고」(이기백, 『역사학보』27, 1968)
• 본 항목의 내용은 관계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