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대 ()

고려시대사
인물
1258년(고종 45), 무오정변(戊午政變)에 산원동정(散員同正)으로 참여하여 위사보좌공신(衛社輔佐功臣)에 책록된 무신.
이칭
이명
박암열(朴巖說)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미상
사망 연도
미상
본관
영해(寧海)
출생지
미상
주요 저서
미상
주요 작품
미상
주요 관직
산원동정(散員同正)|상장군(上將軍)
관련 사건
무오정변(戊午政變)|무진정변(戊辰政變)
내용 요약

박성대는 1258년(고종 45) 무오정변(戊午政變)에 산원동정(散員同正)으로 참여하여 위사보좌공신(衛社輔佐功臣)에 책록된 무신이다. 무오정변은 김준(金俊)과 유경(柳璥) 등을 중심으로 최씨 무신 정권의 4대 집정자 최의(崔竩)를 제거하여 왕정복고를 이룬 정변을 가리킨다. 박성대는 1268년(원종 9) 임연(林衍) 등에 의한 무진정변(戊辰政變) 때 김준의 아들 김주(金柱)를 체포하는 공로를 세우고 대장군(大將軍)과 상장군(上將軍)으로 진급하였다.

정의
1258년(고종 45), 무오정변(戊午政變)에 산원동정(散員同正)으로 참여하여 위사보좌공신(衛社輔佐功臣)에 책록된 무신.
가계 및 인적사항

본관은 영해(寧海), 출신지는 덕원(德原, 지금의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이다. 일명 박암열(朴巖說)이라고도 한다. 아버지는 덕원의 향리(鄕吏) 출신으로서 최의 정권으로부터 김준 정권 때 출세한 장군 박송비(朴松庇)이다.

주요 활동

무오정변(戊午政變)의 위사공신(衛社功臣)인 박송비의 아들로서 최씨 무신 정권(崔氏武臣政權)에서 군인으로 입신(立身)하여 1258년(고종 45) 초반에 산원동정(散員同正)에 이르렀다. 1258년(고종 45) 3월에 별장(別將) 김준(金俊)과 대사성(大司成) 유경(柳璥)이 중심이 되어 최씨 무신 정권을 붕괴시킨 무오정변에 참여하였다. 무오정변은 최의 정권(崔竩政權)의 정치 · 경제적 실정에 불만을 품은 여러 정치 세력이 결집하여 4대 집정자인 최의를 죽이고 왕정복고를 이룩했던 사건을 말한다.

무오정변 때 박성대(朴成大)가 맡은 역할은 알 수 없다. 그러나 김준의 명령에 따라 최의의 저택을 공격할 때 참여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때의 공로로 같은 해 7월에 차송우(車松祐) 등과 함께 위사보좌공신(衛社輔佐功臣, 동력보좌공신(同力輔佐功臣)) 19인(혹은 20인)에 책록되었다.

1268년(원종 9) 12월에 김준 정권의 집정자 김준이 강윤소(康允紹)임연(林衍) 등에 의해 피살될 때 김준의 아들 동지추밀원사(同知樞密院事) 김주(金柱, 초명 김용재(金用材))가 도방(都房)의 군사를 규합하여 항거하려 하자, 박성대는 원종(元宗)의 명령을 받아 김주를 체포하였다.

박성대는 1273년(원종 14) 6월에 대장군(大將軍)으로서 몽골 장수 힌두[忻都]를 개경의 교외에서 영접하였으나, 주연(酒宴)이 성대하지 못하다는 이유로 곤욕을 당하기도 하였다. 1274년(충렬왕 즉위년) 10월 충렬왕이 서북면(西北面)에서 몽골 공주를 맞이할 때 그가 상장군(上將軍)으로서 수행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그 이후의 행적은 확인되지 않는다.

상훈과 추모

1258년 7월 위사보좌공신 19인(혹은 20인)에 포함되었고, 1260년 6월 위사보좌공신 15인에 다시 책봉되었다.

참고문헌

원전

『고려사(高麗史)』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상서도관첩(尙書都官貼)」(『문화유씨가정보(文化柳氏嘉靖譜)』)

단행본

강재광, 『몽고침입에 대한 최씨정권의 외교적 대응』(경인문화사, 2011)
김당택, 『고려의 무인정권』(국학자료원, 1999)
홍승기 편, 『고려무인정권연구』(서강대출판부, 1995)

논문

강재광, 「최씨가 가노출신 정치인의 역할과 무오정변의 성격」(『한국사연구』 127, 한국사연구회, 2004)
정수아, 「김준세력의 형성과 그 향배: 최씨무인정권의 붕괴와 관련하여」(『동아연구』 6, 서강대학교 동아연구소, 1985)
허흥식, 「1262년 상서도관첩의 분석」(『한국학보』 27·29, 일지사, 1982)
野澤佳美, 「金俊の政變について」(『史正』 12, 1982)
집필자
신안식(가톨릭대학교 연구교수, 고려시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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