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원(德原: 지금의 경상북도 영덕) 출신. 1258년(고종 45)에 장군으로 대사성 유경(柳璥), 별장 김준(金俊, 金仁俊) 등과 함께 최의(崔竩)를 살해하여 최씨무신정권을 타도하고 정권을 왕에게 돌렸는데, 그 공으로 대장군이 되고 뒤이어 위사공신(衛社功臣)이 되었다.
1259년에 박송비의 공으로 내향(內鄕)인 예주(禮州: 지금의 盈德)를 덕원소도호부(德原小都護府)로 승격시키고 다시 예주목(禮州牧)으로 승격시켰다. 1262년(원종 3)에 공신당(功臣堂)을 다시 지을 때 벽에 도형되었으며, 그 해 동지추밀원사 우산기상시(同知樞密院事右散騎常侍)가 되었다.
1263년에 수사공 태자소부 좌복야(守司空太子少傅左僕射)가 되었고 1278년(충렬왕 4)에 참지정사(參知政事)에 이르러 별세하였다. 박송비는 성품이 너그럽고 사람들과 공을 다투지 않았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