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위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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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시대 신라의 각간 위홍과 『삼대목』을 저술한 승려.
대구 (大矩)
삼국시대 신라의 각간 위홍과 『삼대목』을 저술한 승려.
888년 각간 위홍과 대구화상이 왕명을 받아 편찬한 향가집.
삼대목 (三代目)
888년 각간 위홍과 대구화상이 왕명을 받아 편찬한 향가집.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집사성시중, 상대등 등을 역임한 관리이다. 862년(경문왕 2) 정월에 아찬(阿飡)의 관등으로 집사성(執事省) 시중이 되었고, 874년(경문왕 14)에는 상대등으로 임명되었다. 이때 이찬으로 승진하였을 것으로 보이는데, 재직한 지 1년이 지난 875년에 헌강왕이 즉위하자 상대등에서 물러났다.
위진 (魏珍)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집사성시중, 상대등 등을 역임한 관리이다. 862년(경문왕 2) 정월에 아찬(阿飡)의 관등으로 집사성(執事省) 시중이 되었고, 874년(경문왕 14)에는 상대등으로 임명되었다. 이때 이찬으로 승진하였을 것으로 보이는데, 재직한 지 1년이 지난 875년에 헌강왕이 즉위하자 상대등에서 물러났다.
진성여왕은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제51대 왕이다. 재위 기간은 887~897년이다. 즉위 초에는 조세를 면제하고 황룡사에 백좌강경을 설치하는 등 민심수습에 노력했다. 그러나 숙부이자 남편이던 상대등 위홍이 죽자 정치기강이 갑자기 문란해졌고 사방에서 도적이 봉기했다. 원종과 애노의 난도 평정하지 못했고 북원의 양길은 궁예를 시켜 명주를 함락시켰으며, 완산주에서는 견훤이 후백제를 건국했다. 894년 당에서 돌아온 최치원이 시무10조를 올렸지만 시행되지 못했다. 897년 헌강왕의 아들 요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그 해에 죽었다.
진성여왕 (眞聖女王)
진성여왕은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제51대 왕이다. 재위 기간은 887~897년이다. 즉위 초에는 조세를 면제하고 황룡사에 백좌강경을 설치하는 등 민심수습에 노력했다. 그러나 숙부이자 남편이던 상대등 위홍이 죽자 정치기강이 갑자기 문란해졌고 사방에서 도적이 봉기했다. 원종과 애노의 난도 평정하지 못했고 북원의 양길은 궁예를 시켜 명주를 함락시켰으며, 완산주에서는 견훤이 후백제를 건국했다. 894년 당에서 돌아온 최치원이 시무10조를 올렸지만 시행되지 못했다. 897년 헌강왕의 아들 요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그 해에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