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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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사
인물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집사성 시중, 상대등 등을 역임한 관리.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미상
사망 연도
미상
주요 관직
통일신라 집사성 시중|상대등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내용 요약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집사성시중, 상대등 등을 역임한 관리이다. 862년(경문왕 2) 정월에 아찬(阿飡)의 관등으로 집사성(執事省) 시중이 되었고, 874년(경문왕 14)에는 상대등으로 임명되었다. 이때 이찬으로 승진하였을 것으로 보이는데, 재직한 지 1년이 지난 875년에 헌강왕이 즉위하자 상대등에서 물러났다.

정의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집사성 시중, 상대등 등을 역임한 관리.
주요 활동

862년(경문왕 2) 정월에 이찬(伊飡) 김정(金正)상대등(上大等)에 임명되자 아찬(阿飡)의 관등으로 집사성(執事省) 시중(侍中)에 제수되었다. 12년 뒤인 874년(경문왕 14)에 상대등 김정이 죽자, 상대등으로 임명되었고 시중에는 인흥(藺興)이 제수되었다. 상대등의 관등이 대체로 이찬(伊飡)이었으므로, 이때 이찬으로 승진하였을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재직한 지 1년이 지난 875년에 헌강왕이 즉위하자 상대등에서 물러났고, 경문왕의 동생이자 헌강왕의 삼촌인 이찬 위홍(魏弘)이 상대등에 임명되었다.

의의와 평가

집사부는 651년(진덕왕 5)에 국왕 직속의 관서로 설치되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이곳을 중심으로 정치력을 확장하는 새로운 세력이 성장하여 왕권을 제약하는 요소가 되기도 하였다. 상대등과 집사부 장관인 시중은 같은 정치적 입장을 띠는 상하 관직으로 변모하였는데, 위진이 시중에서 바로 상대등으로 승진한 것이 그와 관련될 수도 있다. 다만, 경문왕은 재위 말년까지 측근 관인을 중용하여 왕권의 강화를 도모하였으므로, 반드시 그에 합당한 사례라고 하기는 어렵다.

참고문헌

원전

삼국사기(三國史記)

단행본

이영호, 『신라 중대의 정치와 권력구조』(지식산업사,2014)

논문

박수정, 「신라 집사성의 성격과 위상에 대한 재론」(『신라사학보』 40, 신라사학회, 2017)
장일규, 「숭복사비명과 경문왕계 왕실」(『역사학보』 192, 2006)
송은일, 「신라하대 헌강왕의 친정체제 구축과 위홍」(『신라사학보』 5, 신라사학회, 2005)
이기백, 「신라하대의 집사성」(『신라정치사회사연구』, 일조각, 1974)
이기백, 「상대등고」(『역사학보』 19, 역사학회, 19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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