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월성로고분군에서 가장 시기가 빠른 무덤인 덧널무덤으로는 가 29 · 30 · 31호묘이다. 부분적인 발굴 조사만 이루어져 전체 모습을 알 수 없지만, 장방형(長方形)의 무덤구덩이를 파고 그 안에 덧널을 만든 구조이다. 무덤구덩이와 덧널 사이의 충전 공간이 확인되지 않아 덧널의 너비는 알 수 없다. 덧널 3기 모두 꺾쇠가 확인되어 꺾쇠로 덧널을 조립하였음이 확인되었다.
덧널무덤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큰 29호묘는 무덤구덩이 너비가 380㎝이다. 이 정도 너비의 무덤구덩이면, 무덤구덩이의 평면 형태가 긴 네모 모양이고, 으뜸덧널과 딸린덧널을 각각 별도로 만든 이혈(異穴) 으뜸 · 딸린덧널식 묘제로 추정된다.
29호묘는 일부만 조사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납작도끼모양 덩이쇠, 판갑옷, 비늘갑옷 미늘 등이 출토되었다. 덩이쇠와 비늘갑옷은 길이가 길고 너비가 좁은 경주형 덧널무덤에서 이전까지는 출토된 사례가 없었다. 그리고 일본제의 돌팔찌와 하지끼〔土師器〕계 토기 등이 출토되었다.
돌무지덧널무덤은 5세기 전반부터 6세기 전반까지 만들어졌는데, 무덤구덩이 전체에 돌을 덮은 것과 덧널 주변에만 돌을 채운 것이 있다. 5세기 전반의 돌무지덧널무덤으로는 가-5 · 6 · 8 · 12 · 13호묘 등이 있다. 이 돌무지덧널무덤은 깊이가 얕은 무덤구덩이를 파고 덧널을 설치한 후, 덧널과 무덤구덩이 사이, 덧널 위에 냇돌을 쌓았는데, 덧널 위쪽에 쌓은 냇돌의 양은 적다.
가-13호묘는 길이 350㎝, 너비 240㎝, 깊이 80∼90㎝의 크지 않은 규모임에도 불구하고 5구를 합장한 매우 특이한 매장 양식을 보인다. 덧널 내부에서 약 60점의 토기, 5점의 고리자루큰칼과 수 점의 큰칼, 화살통 꾸미개, 곱은옥으로 만든 목걸이, 금목걸이 · 가슴장식 · 드리개 · 귀걸이 등의 장신구와 함께, 금그릇 · 유리그릇 등 화려한 유물이 출토되었다.
이외의 돌무지덧널무덤에서도 다양한 종류의 유물이 출토되었는데, 고구려제의 녹유도기호(綠釉陶器壺), 불꽃무늬 투창(透窓)이 있는 굽다리접시, 뿔잔, 뚜껑굽다리접시, 토우가 장식된 뚜껑굽다리접시, 짧은목항아리, 굽다리긴목항아리 · 굽다리주발 · 연질옹(軟質甕) 등 5∼6세기 대의 신라토기와 함께 장신구와 무기류가 출토되었다.
구덩식돌덧널무덤은 강돌로 덧널을 짜고, 돌덧널 바닥에 잔자갈을 깔았으며, 한쪽 끝에 별도의 칸을 만들거나 별도의 시설을 만들어 유물을 부장하였다. 독무덤은 항아리 2개의 아가리를 맞대어 만든 이음식이다.
경주월성로고분군은 무덤의 형식, 출토 유물의 종류와 특징 등을 통해서, 그 조성 시기는 4세기에서 6세기 전반으로 편년된다. 이 무덤군은 덧널무덤과 돌무지덧널무덤, 구덩식돌덧널무덤 등 다양한 묘제가 확인되고, 다양한 유물이 출토되어 신라고분 및 신라토기의 변화와 특징을 구명할 수 있는 중요한 유적이다. 특히 그동안 논의되어 온 돌무지덧널무덤의 등장 시기와 계통을 새롭게 해석할 수 있는 자료들이 확인되었다.
최근 조사가 이루어진 경주 쪽샘지구의 발굴 조사 성과와 더불어 월성 주변은 이미 3세기 대부터 무덤군이 조영되기 시작하였고, 늦어도 4세기 전반에는 이혈 으뜸 · 딸린덧널식의 대형 덧널무덤이 조영되면서 이곳이 신라 중앙 지배 집단의 묘역으로 자리 잡았음을 나타낸다. 4세기 대 이곳 월성 일대에는 으뜸덧널과 딸린덧널을 별도로 만든 이혈 으뜸 · 딸린덧널식 덧널무덤이 조영되고, 꺾쇠를 사용하여 덧널을 조립한 구조임이 확인되었다.
이혈 으뜸 · 딸린덧널식 묘제 및 꺾쇠로 덧널을 조립한 덧널무덤의 특징은 두 가지 측면에서 의의가 있다. 첫째, 신라 최고 지배층의 전용 묘제인 돌무지덧널무덤의 구조로 계승되었음을 보여 주는 가장 이른 시기의 돌무지덧널무덤이라는 점이다. 둘째, 인접한 황남동 · 황오동 일대에 자리하는 대형 돌무지덧널무덤과의 관계를 엿볼 수 있는 자료들이 다수 확인되었다는 점을 제시할 수 있다.
신라 중앙 지배층의 집단 묘역에 포함되는 경주월성로고분군의 피장자는 신라 중앙 지배층의 일부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