곱은옥 (곱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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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모곡옥
금모곡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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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부분 가운데 구멍을 뚫어 금실[金絲]이나 끈으로 매다는 옥으로 만든 장신구의 일종.
이칭
이칭
곡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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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요약

곱은옥은 머리부분 가운데 구멍을 뚫어 금실[金絲]이나 끈으로 매다는 옥으로 만든 장신구이다. 머리 부분은 크고 굵으며 꼬리 부분으로 가면서 가늘게 꼬부라져서 곱은옥, 곡옥(曲玉)이라고 한다. 흙이나 돌, 옥 등으로 제작하는데 옥으로 제작한 것이 가장 많다. 신석기시대에는 짐승의 뼈나 송곳니 등을 이용하여 만들었는데 청동기시대에는 천하석(天河石)으로 제작되었다. 신라·가야·백제에서도 애용하였는데 특히 경주 귀족에게는 부와 힘의 상징이었다. 통일신라시대까지 제작되다가 6세기 중엽 이후 쇠퇴하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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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머리부분 가운데 구멍을 뚫어 금실[金絲]이나 끈으로 매다는 옥으로 만든 장신구의 일종.
개설

‘곡옥(曲玉)’이라고도 한다.

음양을 나타내는 빨강 · 파랑의 태극형태와 비슷하고 ‘쉼표(,)모양’을 확대한 모습과 비슷하다. 머리부분은 크고 굵으며 꼬리 부분으로 가면서 차차 가늘게 꼬부라져서 곱은옥이라 한다. 영어로는 ‘Comma Shaped Jade’, 일어로는 ‘마가타마(勾玉)’라고 한다.

관통한 구멍에서 양쪽으로 같은 길이의 음각선(陰刻線)이 있는 것도 있고 머리에 금모자를 씌운 것도 있다. 크기는 1㎝ 내외로부터 10㎝ 내외까지에 이른다. 재료는 흙 · 돌 · 뿔 · 뼈 · 비취 · 백옥 · 청옥 · 수정 · 마노(瑪瑙) 등이 있으나 옥으로 된 것이 많다.

내용

곱은옥의 조형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으나 몇 가지만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① 동물의 치아에 구멍을 뚫어 차고 다니면서 맹수를 잡았다는 힘자랑으로, 또는 자신을 돋보이게 하려고 한 장신구로서 패용하였다는 설, ② 호부(護符)나 주술적(呪術的)인 의식용구로 사용하였다는 설, ③ 형태가 초승달과 비슷하여 고대인들이 농경 · 고기잡이 · 항해 등에 달을 이용하였다는 월신신앙(月神信仰)과 관련된 것으로 보는 설로서 보름달 · 반달 · 초승달 중에서도 특히 초승달의 모양을 본떴다고 한다. 초승달은 차고 푸르러 비취색 · 청색옥을 썼다고 한다. ④ 『구약성서』 사사기 · 이사야서의 서기전 10세기경 고대 오리엔트인들이 달 숭배사상에서 반달장식을 애용한 것에서부터 유래되었다는 설이다.

곱은옥은 중국 일부와 아시아 지역에서도 출토되고 있으나, 한반도 및 일본에서 크게 발달되었다.

우리나라의 곱은옥은 형식상 선사시대(신석기∼초기철기)와 역사시대(원삼국∼삼국)의 두 시대군으로 나누어진다. 선사시대 곱은옥은 원시곱은옥형 · 반월형(半月形) · 반결형(半玦形) · 벌레형 · 반환형(半環形) · 부정형(不定形)이 있으며, 역사시대의 곱은옥은 수정옥형(水晶玉形) · 고전형(古典形) · 유리옥형 · 이형(異形)이 있다.

원시곱은옥형은 짐승의 뼈 · 발톱 · 송곳니 따위에 구멍을 뚫어 만든 원시적 꾸미개에서 출발한 것이라고 생각되며, 옥 · 돌 · 뼈 등으로 만든 것이 신석기시대부터 나오고 있다. 그러나 청동기시대가 되면 푸른 천하석(天河石, amazonite)으로 만든 반월형이 만주의 요령성 지방에서부터 우리나라 전역에 걸쳐 나타나 새로운 곱은옥 형식의 한 출발점이 된다.

이 반월형식은 초기철기시대(서기전 300∼0년)가 되면 한 쪽에 홈이 패이면서 반결형으로 발전하게 된다.

이것이 신석기시대 이래의 송곳니형식 전통과 합쳐져 삼국시대 곱은옥의 조형(祖形)이 되었다고 믿어진다. 역사시대의 시작인 원삼국시대(0∼300년)에는 천하석을 사용한 것은 보이지 않고 유리수정 제품이 나타난다. 또, 이 시기에는 부장품이나 제사 때의 공헌물(供獻物)이라고 생각되는 토제품(土製品)도 발견되고 있다. 4세기의 소위 고분기로 들어가면서 곱은옥의 형태는 고전형으로 완성되고, 재료도 경옥이 마노 · 호박(琥珀) · 귀금속 등과 함께 쓰이기 시작하면서 5세기의 경옥제 곱은옥의 전성기를 맞이하게 된다.

곱은옥은 신라 · 가야 · 백제에서 모두 애용되었다. 특히 신라에서는 경주 귀족들의 부와 힘의 상징같은 존재였다. 목걸이나 흉식(胸飾)의 주옥(主玉)으로서뿐만 아니라, 금관 · 귀걸이 · 팔찌 · 허리띠 등에 매달아 높은 신분의 표시와 육신의 아름다움을 돋보이게 하였다.

한편, 특수형식으로서 활석제 딸린곱은옥[母子曲玉]이 발견되고 있다. 이 활석제 곱은옥은 일본에서 제사 때 쓰이는 공헌물로 많이 만들어지고 있어, 우리나라 곱은옥에 대해서도 그와 같은 꾸미개 이외의 용도가 추측되고 있다.

곱은옥의 전통은 통일신라시대까지 일부 계속된 듯하다. 그러나 6세기 중엽이 되면 이미 큰 무덤의 축조가 사라짐에 따라 쇠퇴하기 시작하여 소멸의 길을 밟은 듯하다.

삼국시대 곱은옥의 주재료였던 경옥에 관해서는 우리나라 경옥이 일본 경옥의 수입품일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그 근거로는 경옥이 일본에서 산출되고 경옥사용의 역사도 일본이 긴 점에 있었다.

그러나 최근의 연구에 의해 우리나라 경옥이 성분상 일본과는 다른 것임이 판명되었다. 따라서 일본에서의 경옥사용에 자극받은 신라가 국산 경옥산지를 발견해 개발했던 것으로 믿어지고 있다.

참고문헌

「한국곡옥(韓國曲玉)의 연구(硏究)」(최은주, 『숭실사학(崇實史學)』 4, 숭실대학교 사학회, 1986)
「곡옥(曲玉)의 기원(起源)」(한병삼, 『고고미술(考古美術)』 129·130, 한국미술사학회, 1976)
「청동유물도록(靑銅遺物圖錄)」(『국립박물관학술자료집(國立博物館學術資料集)』 Ⅰ, 1968)
『勾玉』(水野祐, 學生社, 1973)
「朝鮮先史時代の勾玉」(西谷正, 『森貞次郎古稀記念古文化論集』, 19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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