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숭복사비 ()

고대사
유적
남북국시대 신라의 최치원이 찬술한 대숭복사의 연혁을 담은 비명.
이칭
이칭
신라국 초월산 대숭복사 비명 병서
유적/탑·비
건립 시기
886년~890년
관련 국가
신라
관련 인물
최치원
내용 요약

대숭복사비(大崇福寺碑)는 남북국시대 신라의 최치원이 찬술한 대숭복사의 연혁을 담은 비명이다. 886년(헌강왕 12) 봄에 헌강왕으로부터 작성 명령을 받아 890년(진성왕 4)에 작성 완료한 「성주사 낭혜화상백월보광탑비명」 이전에 완성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경문왕이 즉위 이후 원성왕을 추복하고자 하였던 의도는 물론, 최치원의 아버지 최견일이 곡사 중창과 대숭복사 개창 과정에 깊이 관여하였음을 담고 있다.

정의
남북국시대 신라의 최치원이 찬술한 대숭복사의 연혁을 담은 비명.
찬술 과정

최치원(崔致遠, 857~?)이 당에서 귀국한 뒤 서서원(瑞書院) 학사(學士)로 재임하면서 왕명을 받아 사산비명(四山碑銘)을 찬술하였다. 비명(碑銘) 찬술 왕명은 885년(헌강왕11) 3월에 「 봉암사 지증대사적조탑비명」, 886년 7월에 「쌍계사 진감선사대공탑비명」, 890년에 「 성주사 낭혜화상백월보광탑비명」의 순서로 내렸는데, 이 비명은 886년 봄에 왕명을 받아 작성하였다. 찬술 완성 시기는 명확하지 않으나 각 비명의 내용 구성과 비명에 기재한 최치원의 관직명으로 보아, 890년에 「성주사 낭혜화상백월보광탑비명」보다 먼저 완성한 것으로 보인다.

내용

비명은 서문과 명문으로 구성되었는데, 서문은 도입부와 전개부로 나뉜다. 도입부에는 대숭복사 불사(佛事)를 주도한 임금의 덕과 나라의 태평을 강조하는 내용을 담았다. 전개부에는 연혁을 적었는데, 대숭복사의 유래와 기원, 경문왕과 곡사(鵠寺)의 중창, 헌강왕의 등극과 대숭복사 개창, 정강왕의 비명 찬술 명령 계승, 진성여왕의 비명 찬술 독려, 최치원의 비명 찬술 동기와 과정 등 모두 여섯 부분으로 구성되었다.

특히 경문왕이 불사를 통해 유교적 효성을 다하려는 군왕이었고, 헌강왕이 곡사의 이름을 대숭복사로 바꾸면서 관리를 파견하여 재정을 돌보는 한편 국가가 관할하는 정법사(政法司)에 예속시켜 조덕(祖德)을 기리기 위해 곡사를 중창하였던 경문왕의 뜻을 계승하였음을 강조하였다. 또한 정강왕이 대숭복사를 중히 여겼던 헌강왕의 노력을 이었고, 진성왕도 미처 완성되지 못한 비명의 찬술을 독려하였음을 적어 경문왕계 왕실과 대숭복사의 긴밀한 관계를 부각하였다.

현황

삼국유사』 왕력과 기이에 "지금의 숭복사로 최치원이 찬술한 비가 있다."라고 하였으므로, 『삼국유사』 편찬 당시까지는 온전하였던 듯하다. 그 뒤 파괴되어 이수는 없어지고, 현재 15개의 비신(碑身) 조각 일부와 쌍으로 된 귀부 등만이 남아 국립경주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비명은 전라북도 순창군 구암사(龜巖寺) 도서인 필사본이 유일하게 전한다. 2013년에 필사본 비명을 교감하고 귀부와 이수를 복제하거나 고증하여 숭복사터에 복원하였다.

의의 및 평가

최치원이 찬술한 사산비명 중에 왕실 원찰의 연혁을 담은 유일한 비명이다. 경문왕~진성왕의 경문왕계 왕실이 관여한 해인사 중창 불사와 함께 신라 말 신라 왕실이 불교계와 긴밀한 관계를 맺었던 내용과 의도를 살필 수 있는 자료이다. 경문왕이 즉위 이후 원성왕을 추복하고자 하였던 의도는 물론, 최치원의 아버지 최견일이 곡사 중창과 대숭복사 개창 과정에 깊이 관여하였음을 담고 있다.

참고문헌

단행본

『최문창후전집(崔文昌侯全集)』(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1972)

논문

박남수, 「신라 숭복사비 판본의 갈래와 최치원의 할주」(『신라사학보』 27, 2013)
장일규, 「숭복사비명과 경문왕계 왕실」(『역사학보』 192, 2006)
곽승훈, 「최치원의 중국사 탐구와 귀국 직후의 정치개선방안-대숭복사비명에 인용된 중국역사 사례를 중심으로-」(『호서사학』 37, 2004)
박미선, 「숭복사비문을 통해 본 헌강왕과 최치원의 정치적 성격」(『호남문화연구』 34, 2004)
이구의, 「최치원의 '대숭복사비명'고」(『동방한문학』 26, 2004)
윤선태, 「신라 숭복사비의 복원-결・점의 세주와 관련하여-」(『불교미술』 16,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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